“2030들아, 오늘 보고는 피해라. 4050 부장들 열받아 있다.”

4·7 재·보궐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난 다음 날인 8일 아침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글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 중 하나가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들의 몰표에 가까운 쏠림 현상이다.

방송 3사의 출구 조사 결과, 서울에선 이들 중 72.5%가 오세훈 시장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60세 이상 남성(70.2%)을 뛰어넘는 높은 수치다. 20대 남성 중 박영선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은 22.2%로 전 연령과 성별 중 최저 수치로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20대 남성들이 우편향·보수화됐다거나 이들의 야당 지지 성향이 커졌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불거진 온갖 불공정(不公正)에 반발해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켜 달라’고 외치는 호소라는 것이다.

“우리는 혁명을 믿지 않는다”

40대와 50대가 세상이 좋게 바뀔 것이라는 ‘혁명’의 가능성을 낭만적으로 믿었던 세대라면, 지금의 20대는 더 이상 그런 신념을 믿지 않고 각자 개인의 발전에 훨씬 큰 가치를 둔다는 분석이 많다. 허동현 경희대 한국현대사연구원장은 “20대는 민족이나 민중 같은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은 실용주의·합리주의 세대”라며 “길들이기와 편 가르기를 저지르며 위선을 보이는 집권 세력이 이들에게 좋게 보였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전영백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집단이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는 ‘모두 똑같이’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을 원하는데, 이 기대가 배신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지금의 여당 쪽을 지지했었던 젊은 세대가 돌아선 것은, 당초 기대와는 달랐던 데서 나온 실망감의 표출이라는 측면도 있다. 20대인 대중음악평론가 정민재씨는 “20대는 LH, 조국, 윤미향, 박원순 등을 보며 ‘이들도 다르지 않구나’라고 느끼게 됐다”며 “보수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진보에 대한 워닝 사인(경고)”이라고 말했다.

허울뿐인 정의에서 실용적 공정으로

이 현상의 핵심에는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공정’의 문제가 있다. 젊은 세대는 ‘내가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고깃국을 먹고 왔건 콩나물국을 먹고 왔건 체력장 턱걸이 횟수는 제대로 세야 하는 게 아니냐’며 최소한의 ‘공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인국공'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를 둘러싼 공정 논란이다. 소위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4050이 공정한 룰밖에 믿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2030에게 상처 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국가의 존립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앞장서서 파괴해 온 행태가 젊은 세대의 분노를 키운 것”이라며 “20대는 경쟁의 결과로 얻는 것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경쟁의 출발과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되는 것에는 강하게 반발한다”고 했다.

특히 입시와 병역에서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특혜 의혹은 20대가 납득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게임에 비유하자면, 내가 아이템을 사지 않고도 열심히 클릭만 해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달라는 것이 젊은 세대의 요구”라며 “투자 손실이나 시험 낙방 같은 위험은 감수할 테니 ‘할 만한 게임의 판’을 만들어 도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 실패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교육, 취업, 주택 마련은 젊은 세대가 가장 관심이 많은 이슈지만,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심지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젊은이들의 장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알바 자리 몇 개 던져주기만 했던 정부의 위선이 역풍을 맞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대녀'는 오세훈도 박영선도 NO?

같은 20대라도 남성과 여성의 투표가 큰 차이를 보인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 중 박영선·오세훈이 아닌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은 15.1%로 전 연령·성별대 중 월등히 높았다. 이들에게 투표한 20대 남성은 5.2%에 그쳤다. 처음부터 성폭력이라는 젠더 요소로 시작한 보궐선거에서 이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모두 등을 돌리고 페미니즘 등을 앞세운 다른 후보로 지지를 돌렸다는 것이다.

여성 운동가 오세라비씨는 “20대 여성은 페미니즘 운동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집단으로, 이들이 여당이 아닌 다른 당에 표를 많이 줬다는 것은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단일 대오가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요즘 여학생들은 불공정과 페미니즘, 여성이 처한 억압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했다.

그러나 20대 여성 중 44%는 박영선 후보에게 투표했다. 오세라비씨는 “전임 시장이 성 비위로 물러났는데도 이렇게 된 것은, 그래도 국민의힘에는 표를 줄 수 없다는 페미니즘의 진영 논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봤다. 노정태씨는 “20대 여성과는 달리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지니고 있는 20대 남성들은 제3 후보에게 투표할 큰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