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자, 이면지, 완벽함, 단벌신사, 기계체조, 칸트 등이다. 그런데 그분을 가까이 보면 인간적인 매력이 많다. 오래전 나는 그리스, 터키 성지순례에 정 추기경을 초대했다. 정 추기경은 “나의 사목 표어가 사도 바오로의 말씀인데, 그분의 선교 무대였던 그리스와 터키에는 죽기 전에 한번 가고 싶어”라고 하셨다. 드디어 몇 달 후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 정 추기경에게 단체로 맞춘 청색 티셔츠를 건넸다. 그는 “그동안 사제복만 입다가 밖에서 이런 티셔츠를 입어 보는 것은 실로 몇십 년 만이야” 했다. 그는 티셔츠 하나에 연신 웃으며 마치 어린아이같이 무척 즐거워했다. 그 모습이 참 오래도록 마음에 아려온다.
정 추기경께서 한번은 “나는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되면서 나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유폐 생활을 한 셈이야...”라고 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책임과 의무의 무게는 엄청났으리라. 실제로 보통 때는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던 그분은 서울대교구장직을 떠나는 마지막 사제 회의에서 소감을 말하다가 흐느껴 울었다. 사제들은 무척 당황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도 그 자리에 미련이 있나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말을 꺼냈다. “평생 자신을 짓누르던 긴장감이 풀리셔서 감정이 폭발했나 봐요.” “글쎄말이야, 그동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참아왔었나 봐....” 그분은 그렇게 외로운 길을 평생 사셨던 것 같다.
정 추기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행복을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마치 우리의 부모님처럼 하느님도 당신의 자녀인 인간의 행복을 가장 원하지 않을까? 그런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정 추기경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이라 했다. 그는 시간을 생명과 같은 연장 선상에서 보았다. 그래서 내가 남을 돕는 데 한 시간을 사용하면 그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생명 중 한 시간을 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 추기경이 유독 시간을 아끼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정 추기경께서 나에게 아주 화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어떤 행사에 대한 엠바고가 지켜지지 않아 교구가 곤란해진 적이 있었다. 다른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는 정 추기경에게 엄청 야단을 맞았다. 나는 자존심도 상하고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정 추기경이 나를 불러 마당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허 신부 아까는 내가 미안해, 내가 참지를 못하고 잘못했어....”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무척 용기가 필요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진석 추기경은 어느 가을 주교관 입구로 내려가다 멈추고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해 가을에도 그 나무에는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때 마침 여고생들이 재잘대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정 추기경은 소녀들에게 이 가을의 기분을 전해 주고 싶었다. “얘들아, 땅만 보며 떠들지 말고 하늘을 보고 감나무도 봐! 가을을 느껴야지?” 그러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큰소리로 대꾸했다. “할아버지나 많이 느끼세요! 우리가 알아서 느껴요!” 예상치 못한 소녀들의 반응에 정 추기경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할아버지 이야기한 것 바로 취소다!” 지금도 그 나무를 보면 어린 소녀들에게 기꺼이 져주던 정 추기경의 환한 미소가 보이는 것 같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