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님은 사목표어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처럼 일생을 사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하느님의 뜻인지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 분의 영원한 안식과 부활의 희망 속에 잠든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염수정 추기경)
지난달 27일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1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 19 방역지침에 따라 성당 내부엔 전체 좌석의 20%인 250명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강론 도중 감정이 복받쳐 눈시울을 붉히며 약 2분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곁에서 손수건을 건낼 정도였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 정진석 추기경이 “의지하고 기댈 분이 계시지 않아 참 허전하다”고 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의 당시 말씀을 이제 깊이 공감한다. 마음으로 많이 의지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정 추기경님을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2일 병자성사를 받고 마지막 말씀을 하신 후 ‘하느님 만세!’를 외쳤다”고 일화를 소개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미사 후 추모식에서 알프레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국무원 총리·인류복음화성 장관의 추모 메시지를 대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랜 세월 한국 교회와 교황청을 위하여 봉사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하겠다”며 “부활의 확고한 희망 안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추모사를 통해 “정 추기경님은 1931년 태어나신 후 이 순간까지 하느님 섭리에 따라 대장정 마라톤을 완주하셨다”며 “보통 사람들은 휴식과 여가, 취미와 여행, 건강과 더 나은 안락을 추구하지만 추기경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추기경님은 사목활동을 제외하고는 휴식과 취미도 마다하고 작은 거실과 서재를 우주(宇宙)삼아 오가며 교회와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기도와 묵상, 독서와 집필에만 몰두하셨습니다. 따분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여기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말씀이 들리는 듯 합니다. ‘잘 하였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이여. 와서 당신의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오.’” 이 주교는 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로 한국 사회를 비춰주시고 이 땅의 모든 이가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사제단 대표 백남용 신부는 소신학교(동성고) 시절 3년간 담임 선생님이었던 정 추기경을 회고했다. 정 추기경에게 서울대교구장 착좌 기념 축하곡을 작곡해 드리고, 스승의 날에 장미꽃 100송이를 선물하면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다며 “수많은 따뜻한 추억을 남기고 천국으로 가시는군요”라고 말했다. 백 신부는 “와인 한 잔을 사랑하는 스승님, 예수님 직영공장에서 나오는 가나표 와인(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가나의 혼인잔치를 의미)이 기가 막히답니다. 매년 책 한 권씩 쓰시던 수고 내려놓고 천상의 주님 식탁에서 편히 음미하세요”라고 말했다.
수도자 대표로 추모사를 한 정로사 수녀(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는 “인자한 아버지처럼 그동안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애써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린다”며 “교회의 어른으로 모시며 가까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라고 말했다. 손병선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은 “투병 중에 보여주신 온유함과 무소유의 모범은 큰 귀감이 됐으며 행복한 삶의 의미와 복된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손희송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감사인사를 통해 “정 추기경님은 항상 밤하늘에 작은 별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지만 이제 큰 별이 되셨다”며 “저희도 기쁘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작은 별이라도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식과 고별식을 끝으로 2시간에 걸친 장례 절차는 모두 끝났다. 낮 12시 20분쯤 정진석 추기경은 조종(弔鐘)이 울리는 가운데 유년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이었던 명동대성당을 떠나 경기 용인 천주교묘원으로 출발했다.
용인공원묘원에서 하관예절은 오후 1시 20분쯤 시작돼 약 40분간 진행됐다. 성직자묘역에서 유가족과 주교단, 사제, 일반 신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의 묘소 옆자리 1평 정도의 공간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정 추기경의 묘비명은 사목표어였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다.
공식 조문 기간인 28~30일 정진석 추기경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4만6천63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