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禪宗)의 6조 혜능(慧能) 이후 당송(唐宋)시대를 ‘선(禪)의 황금시대’라 일컫는다. 전설적인 선승(禪僧)들이 잇따라 등장해 선불교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뜻이다. 한국에도 ‘선의 황금시대’가 있었다. 1940년대 말 봉암사 결사를 계기로 성철·향곡·청담·월산·법전·성수·혜암 스님 등 30여명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참가자 중 종정 4명, 총무원장 7명이 나오는 등 이들이 중심이 돼 20세기 후반 한국 불교의 정신세계를 이끌었다. 눕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座不臥),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일종식(一種食), 1주일 이상 잠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勇猛精進) 등 치열한 수행법이 이들을 통해 세상에도 알려졌다.
봉암사 결사 참가자로 조계종 종정과 해인총림 방장을 지낸 혜암(慧菴·1920~2001) 스님은 평생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공부하다 죽어라!”고 일갈한 전설의 주인공이다. 스님의 탄생 101주년과 입적 20주년을 맞아 ‘혜암 평전’(조계종출판사)이 나왔다. 불교 저술가 박원자씨가 제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625쪽 방대한 분량으로 재구성했고, 스님의 제자인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감수했다.
책은 10대 때 일본 유학 중 만난 ‘선관책진’이란 책을 통해 불교에 첫발을 딛고 해인사로 출가해 전국의 이름난 수행처에서 성철 스님 등과 함께 극한의 수행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던 중 홀연 ‘미혹할 땐 나고 죽더니/깨달으니 청정법신이네...’란 깨달음의 노래를 읊은 사연이 생생히 펼쳐진다. 스님은 특히 산승(山僧)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참선을 일반 신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애썼다. 1981년 스님이 머물던 원당암에 재가불자 선원인 ‘달마선원’을 개원한 것이 대표적. 저자 박원자씨는 “직접 참선 수행 동참이 어려울 때에도 새벽 수행을 마치는 시간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제자인 대오 스님은 “예불 후엔 바로 호미 들고 밭으로 가야지, 방에서 누워 쉬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며 “수행자는 항시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혜암 스님이 평생 머물렀던 해인사 원당암 마당엔 ‘”공부하다 죽어라’는 글귀가 새겨진 죽비 모양 비석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