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김우진

<김우진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가 가까워졌다. 바로 그때를 박철혼(소설가)은 “만뢰(萬賴·만물의 소리)는 죽은 듯이 고요한데 오직 창공에는 뭇별들이 반짝이고 그믐에 가까운 달이 빛을 더하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윤심덕은 김우진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8월 밤이었지만 바닷바람은 신선했다. 그리고 신을 벗었다. 두 젊은이는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아! 모두 다 헛된 꿈이로구나”를 중얼거리면서 시커먼 파도 위로 몸을 던졌다. 비운의 두 젊은 선각자의 밤으로의 기나긴 여로(旅路)가 끝나고 영원을 향해 가는 순간이었다.>

한국 공연예술 연구가이자 연극평론가인 유민영 단국대 석좌교수가 최근 낸 연구서 ‘사의 찬미와 함께 난파하다: 윤심덕과 김우진’(푸른사상)에서 재구성한 윤심덕(1897~1926)과 김우진(1897~1926) 최후의 모습이다.

‘사의 찬미’로 일세를 풍미했던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현해탄 동반 정사(情死)는 큰 파란을 일으켰다. 최근에도 영화 ‘사의 찬미’(1991), 동명의 연극(1988)과 뮤지컬(2005), 이종석과 신혜선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2018), 뮤지컬 ‘글루미 데이’(2012) 등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주됐다.

유 교수는 두 사람의 평전인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로 “두 사람의 극적인 죽음이 그처럼 많이 다뤄지면서도 사건의 비극적 본질은 여전히 왜곡되고 가려진 채 언제나 대중의 입맛대로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로맨틱한 정사로만 취급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새로운 근대 문명을 접하고 실천하려 했던 두 선각자가 비극적 현실 속에서 좌절했다는 시각이다. 유 교수는 1차 사료인 당대의 기사·문헌들을 분석하고 유족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

일찍이 재능을 인정 받아 관비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윤심덕은 이 땅에 양악과 신극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던 근대 문예 초창기에 그것을 몸소 실현한 여성이었다. 대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명문 와세다대에서 유학하며 영문학과 연극이론을 배운 김우진은 해박한 문예 지식과 통찰력을 갖췄던 선구적 문학가였다.

그러나 한 세기 전 조선에서 그들의 사랑은 유부남과 미혼 여성의 ‘불륜’으로만 치부되는 소재였다. 유 교수는 “그들은 거대한 암벽과 같은 구습에 부단히 도전했고 몸부림쳤지만, 그들의 연약한 주먹으로 견고한 유교적 구습을 부술 수 없었다”고 했다. 동반 정사라는 선택은 극한적인 방법으로 사회 윤리에 항거한 것이란 의미다.

“여명기에 그들은 하나의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그 불빛이 세상을 밝히기에는 너무나 여렸다... 주변의 광풍에 자신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 점에서 그들의 죽음은 하나의 조그만 항의였다. 그런데 당시 사회는 너무나 닫혀 있고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 항의조차 이해 못 했다.”

유 교수는 그들의 죽음을 ‘한국 지성사의 후퇴를 가져온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가장 큰 돌발 사고’라고 결론 지었다.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인 윤심덕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양악의 발전이 십수 년 지연됐고,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뛰어넘어 표현주의 극까지 실험했으며 앙투안식의 소극장 운동을 계획하고 연극박물관까지 구상했던 김우진이 사라짐으로써 우리의 신극 발전 역시 수십 년씩이나 지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8년 SBS 드라마로 제작된 '사의 찬미'. 신혜선이 윤심덕, 이종석이 김우진 역을 맡았다.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