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틀을 세워주시고, 우리에게 전해주신 신앙 선조들께 영광을 드립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들과 부족한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1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는 이튿날 대전교구 사제·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첫 교황청 고위직 임명으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에 한국 천주교에 주어진 큰 은총이자 선물이다. 염수정 추기경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에 유 대주교님 개인뿐 아니라 우리 한국 교회 전체가 뜻깊은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직자성 장관은 교황, 국무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교황청 행정 10위권 안에 포함되는 핵심 보직이다. 현재 교황청에는 9개 성(省)이 있다.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경신성사성, 시성성, 인류복음화성, 성직자성, 봉헌생활회 및 사도생활단성, 교육성, 주교성 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후 아시아·아프리카 대륙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4월 유 대주교 면담 자리에서도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이 있는데, 아시아 출신은 한 분(필리핀 출신 타글레 인류복음화성 장관)뿐”이라며 장관직 수락을 권유했다.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높아진 점과 함께 본인이 오랜 기간 교황청 인사들과 긴밀하게 소통해온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유 대주교는 1970년대 교황청립 로마 라테라노대에 유학해 교의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1979년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해 대전가톨릭대 총장 등을 거쳐 2005년부터 대전교구장직을 수행해왔다. 본인 말대로 “아시아의 작은 교구 주교”였다. 그렇지만 대전교구는 한국에서 천주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여 김대건 성인 등을 탄생시킨 ‘순교자의 땅’. 유 대주교는 대전교구장 시절 솔뫼·해미성지 등을 가꾸고 직접 교인들과 함께 성지 도보 순례에 나서는 등 신앙 선조들을 현양해왔다. 또 대외적으로는 유학 경험을 살려 교황청 인사들과 수시로 소통해왔다. 교황과 직접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성직자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전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솔뫼성지·해미성지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것도 유 대주교의 청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 대주교의 장관 임명은 한국에 네 번째 추기경 탄생 전망을 밝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일 임명과 함께 바로 유 주교를 대주교로 승품(昇品)했다. 교황청 다른 장관들이 대부분 추기경이란 점에서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유 대주교가 2016년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