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시대의 남편상(像)에 대해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다. 철저한 가부장제와 남존여비의 시대에 양반 남자들은 나랏일이나 글공부에 전념할 뿐, 집안 살림은 모두 아내가 맡아 했을 거라 짐작한다.

/박상훈 기자

그런데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서가 나왔다. 최근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돌베개)을 낸 정창권(54)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는 “조선 양반 남편들이야말로 집안의 대소사를 살피는 살림꾼이었다”고 말한다. 고전산문을 전공한 그는 옛글을 토대로 조선시대 여성사를 거쳐 ‘남성사(史)’까지 연구하게 됐다. “의외로 꽉 막힌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출산과 길쌈(옷감 제작)을 뺀 모든 살림이 남자의 영역이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대가족에 노비까지, 오늘날의 중소기업 수준인 집안 경영을 위해 양반 남자들은 매일 새벽 3시 무렵 잠에서 깨 고된 ‘집안일’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장보기에 해당하는 복잡한 일을 남자들이 도맡았습니다. 농사 감독해야죠, 사냥을 하거나 양봉을 하거나 닭을 길러야죠, 땔감도 마련해야죠.”

게다가 육아와 자식들의 교육도 책임졌고, 이미 결혼한 자식과 손자들도 끝까지 챙겼다. 아내와 사별한 경우에는 부엌에 들어가 요리까지 손을 댔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현대 사회가 ‘아내가 남편의 사회 활동을 뒷바라지하는 구조’였다면, 조선시대는 ‘남편이 아내의 안살림을 뒷바라지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일부 예외적인 기록을 보고 확대 해석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공식 기록을 벗어난 방대한 일기와 편지 자료들에 일관되게 ‘살림꾼’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쇄미록’을 쓴 조선 중기 학자 오희문(1539~1613)의 아내가 ‘왜 가사를 돌보지 않느냐’고 남편을 질책할 정도로 살림은 조선 남자들에게 당연한 책무였다. 당시 가정 불화 원인의 1순위는 외도가 아니라 ‘살림 무관심’이었다는 것. 조선시대 내내 사직하고 낙향하려는 지방 출신 관리들의 상소가 빈번했던 것도 ‘집안을 챙기기 위해서’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조선 남편들의 그런 모습이 왜 지금은 친숙하지 않을까? “20세기 들어서 일제의 황국신민화 과정에서 우리 전통에 없던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여성을 가사 노동의 전담자로 만들었던 것이죠.” 이후 1970년대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와 가정이 완전히 분리돼, 여자는 가정에서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주부(主婦)가 됐다는 것이다. 결혼 후 30년 동안 조선시대 남자들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고 있다는 정 교수는 “살림을 하찮은 것이라 여긴다면 오히려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