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재능 낭비’란 이야기를 들으며 일차방정식을 가르치고,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중저음 목소리로 일차함수를 설명하다 ‘슬픈 수학’이란 별칭을 얻는다. 학창 시절 1등을 밥 먹듯이 했다는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수(指數) 원칙을, 원 지사에게 밀려 아깝게 전국 1등을 놓쳤다는 나경원 전 의원은 시인 김춘수의 ‘꽃’을 읊는다. 정치인뿐 아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등 장안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면 유력 대선 주자부터 사교육 일타 강사까지 가리지 않고 출연한다. 29년 차 방송인 홍진경(44)을 가르치기 위해서. 구독자 88만명을 돌파한 유튜브 ‘공부왕 찐천재 홍진경’ 이야기다.
홍진경이 누구인가. 1993년 제2회 슈퍼 엘리트 모델 대회에서 베스트 포즈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 이영자와 함께 버스 안내양(‘영자의 전성시대’)으로 분해 전 국민을 웃겼고, 2000년 중반 어머니와 함께 김치 사업가로 변신해 사업 수완까지 인정받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
그런 홍진경이 “일하느라 학창 시절에 공부할 시기를 놓쳤다. 사업할 때, 육아할 때 아이한테 많이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었다”며 “아이가 무엇을 물어볼 때 당당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공부왕 찐천재 입학 원서 중)”고 들고나온 유튜브 콘텐츠가 ‘공부왕 찐천재’다. 그는 2003년 사업가인 남편 김정우씨와 결혼해, 2010년 딸 라엘양을 낳았다. 그는 딸 라엘양을 위해 실제 2년째 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이 유튜브에서 홍진경은 일에선 성공했지만 배움만은 조금 모자라 가끔 주눅이 들었던 엄마 홍진경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선 30분 넘게 문구점을 배회하고, 두뇌 회전에 좋다는 견과류를 산 뒤, 정기를 받겠다며 느닷없이 서울대로 향하다가도, 결국엔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일차 함수를 푼다. 지난 2월 시작한 유튜브가 반년이 안 돼 구독자 88만명을 돌파하고, 홍진경에게 ‘연예인 유튜버’ 부문 대상(2021 올해의 브랜드 대상)을 안긴 건 이런 홍진경의 재치와 솔직함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유튜브 촬영을 막 끝낸 홍진경을 만났다. 인터뷰 장소로 가는 길, 채 5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여러 사람이 다가와 ‘만재’라며 그에게 사인과 셀카 요청을 했다. 만재는 홍진경이 유튜브 구독자들을 부르는 애칭. ‘천재’의 첫 글자와 동음이의어인 숫자 1000을 1만으로 바꿨다.
◇만사 귀찮지만 한번 해보자
–공부왕 찐천재 서두에도 나오듯 모델부터 방송, 사업체 대표까지 손대는 것마다 톱(TOP)이었다. 굳이 다시 의무 교육과정까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
“요즘 말로 하면 나는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 가르쳐야 하는 자녀가 없었으면 나 역시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아이를 학원에만 맡기자니 잘 배우는지 걱정도 되고, 성적도 안 오르고···. 집에서 직접 가르치다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되는데, 고학년 때는 어려워져서 내가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다른 과목은 유튜브 채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수학만큼은 재밌고 쉽게 하는 곳이 없더라. 그렇다면 ‘내가 한번 쉽고 재밌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채널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실제 유튜브 개설로 이어진 건가.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엄두를 못 냈다. 지금 공부왕 찐천재를 같이하는 이석로 PD를 만나면서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이 됐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고, 많은 사람을 겪다 보니 몇 마디 나눠보면 그 사람의 열정이나 재능이 느껴진다. 이석로 PD의 열정이 죽은 세포 살리듯, 접어놓았던 내 아이디어를 다시 끄집어내 자극하고 깨우더라. ‘저런 에너지라면 만사 귀찮지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TV조선 출신인 이석로(36) PD는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제일 중요한 게 솔직함과 웃기기인데,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인물이 홍진경”이라고 했다. “어느 여자 연예인이 ‘나는 지식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말하겠나.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개그 코드에 최적화된 인물이기도 하다. 콩트도 되고, 토크도 되고, 재치도 있다. 어떤 소재로 유튜브를 해도 중박 이상은 칠 것이라 확신했다.”
실제 안철수 대표가 첫 번째 선생님으로 등장해 중1 수학에 나오는 ‘일차방정식’을 가르치는 영상은 291만회 이상 조회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서울대 의대 박사까지 마치고 서울대 융합대학원장까지 지낸 안 대표가 중1 수학을 가르친다는 콘셉트도 신선한 데다, 실제 중1 학생을 대상으로 하듯 차분하게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에 ‘일차방정식에 눈을 떴다’ ‘방정식을 이렇게 유려하게 설명하다니’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당시 안 대표는 칠판에 ‘?+1=2’라는 수식을 적어놓고 “물음표에 들어갈 숫자가 뭘까. 1이다. 항상 이렇게 모르는 숫자에 물음표를 할 수가 없으니, 물음표 대신 모르는 숫자에 대해 표시하기로 약속한 게 x다. 이게 바로 일차방정식”이라며 맞춤형 수업을 펼쳤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선생님으로 나와 화제였다. 사실 연예인들은 정치와 엮이는 걸 경계하지 않나.
“괜한 오해를 받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가 섭외할 때는 그분이 하는 정치와 상관없이, 너무 단순하게 ‘최고로 공부 잘했던 분’ 개념으로 접근했다. 아예 정치에 대해선 사심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용기 있게 섭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선생님을 한 분 꼽자면.
“그 질문은 정말 어렵다. 안철수, 이혜성 등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정말 많다. 모든 선생님이 개성과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으시다. 가장 최근에 뵌 손주은 선생님은 공부를 잘하는 법에 대해서 근본 원리를 알려주셨다. 공부는 수학이건 영어건 결국 개념인데, 개념은 용어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용어의 70%는 한자로 돼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왜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 알겠더라. 그 영상 보고 라엘이가 스스로 구몬 한자를 시작했다(웃음).”
–구독자가 단기간에 88만명을 돌파하고,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엔터테이너, 연예인 유튜버 부문 1위를 하는 등 ‘대세 중 대세’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웃음). 너무 감사한 상황이지만, 여기에 도취해서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즐겁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재밌게 바라보고 있다.”
–유튜브 기획과 편집, 전 과정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은 편집에 따라 나란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유튜브는 이 편집 과정부터 PPL(간접 광고)을 녹여내는 것까지 내가 직접 참여한다. 이제 앞으로 ‘편집에 관여하지 못하는 방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유튜브 제작 과정이 즐겁다. 수학 공식을 CG로 만들어서 넣는데, 나 같은 백지 상태가 이해돼야 다른 사람들도 이해된다고 생각해서 CG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처음 유튜브 콘텐츠 기획할 때는 엄마들이 ‘그래, 다른 거 보느니 그거라도 봐라’ 하는 마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입장에선 우리 아이가 유튜브를 깔깔거리고 보면서도 어떤 공식 하나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은 웃고 싶어서, 재미 느끼고 싶어서 들어오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내 진짜 목표는 수학 때문에 들어오는 학생이 많아지는 거다.”
–유튜브에 함께 나오는 딸 라엘이를 보면 방송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고, 유소년 스키 선수로도 활동 중이다. 공부 말고도 다양한 길이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딸이 SKY대(서울·고려·연세대) 가길 바라서 이 유튜브를 만든 게 아니다. 대학을 안 간다고 하면 굳이 가라고 할 마음도 없다. 그건 딸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 수학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게 고역이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겹다는 건 슬픈 일이다. 수학이 60점대만 나와도 자존감 지키면서 즐겁게 학창 시절 보낼 수 있다. 10대의 학창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그런데 나는 수학이 너무 힘들어서 고통스럽게 그 시간을 보냈다. 수학이 수업 시수가 좀 많은가(웃음). 다른 시간에는 또래들한테도 인정받고 친구를 리드하는 애가, 수학을 못하면 무시당하고 상처받는다. 우리 아이는 학창 시절을 조금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단지 그 이유다.”
–유튜브뿐 아니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바보 전쟁’ 등에 출연하면서 뇌순녀(뇌가 순수한 사람) 같은 이미지를 얻었다. 사업적으로는 성공한 CEO이고 아이 엄마인데,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망설여지거나 고민되진 않았나.
“나는 내 직업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20대에 멋모르고 인생에 휩쓸려 다니며 코미디를 할 때는 그런 게 창피했을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이 직업의 매력과 카리스마에 내 스스로 반해버렸다. ‘나도 누군가에게 멋진 모습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예능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 망가지는 모습 모두 종합 예술이라 생각하고 했다. 예능이나 웃음을 주는 직업은 자기 재능 없이, 각본이나 대본에 의지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호흡부터 톤까지 진짜 자기 것이어야만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최연소 모델에서 김치 회사 CEO까지
홍진경은 17세 때인 고1, 모델로 먼저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최연소 슈퍼모델이었고, 한국인 최초로 베네통 전속 모델이 됐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모델 홍진경은 잘 모르는 듯하다.
“지나고 보니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계획하고 준비해서 ‘모델이 돼야지’ 하고 가졌던 직업이 아니다. 고1 때 삶의 방황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다가 얻은 행운이었다.”
–그 이후 ‘영자네 전성시대’ ‘금촌댁네 사람들’ 등 코미디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인생을 계획하고 살기 시작한 건 30대에 들어서다. 그 전의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살았다. 그땐 그냥 누가 ‘너 여기 나와’ 하면 나갔고, ‘저기 가라’ 그러면 거기 가 있었다. 그때의 내 발자취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경험이 나를 엄청나게 성장시킨 건 분명하다. 고1 때부터 교실 밖으로 나와 또래들이 겪지 못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경험 속에서 엄청나게 성장했고, 마음도 다쳤지만 질긴 근육도 갖게 됐다.”
–어떤 경험이 당신을 성장시켰나.
“연예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농담을 듣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볼 때. 내가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도 별거 아닌 거로 고민하는구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를 느낀 순간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 사람들도 똑같이 배고프고, 밥 먹고 졸리면 자야 하는 사람들이며,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를 느낀 게 되게 큰 공부였다.”
–2004년엔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에 ‘네가 무슨 김치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김장 때면 이웃들한테 재료비 받아서 만들어주고, 판매도 하셨다. 진짜로 해왔던 걸 조금 크게,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가 않았다. 나는 홍보랑 마케팅을 담당하고, 김치 조리법과 맛은 어머니가 담당한다. 어느새 사업 시작한 지 17년이 됐다. 잘된다고 해서 문어발식으로 새로운 상품을 내보낸다거나, 누군가 기획해서 가지고 온 아이디어에 대해 욕심 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고, 신상품도 자신 있을 때만 내놨다. 의아하다 생각한 사람들도 점차 우리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주신 것 같다. 즐겁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한다는 생각이다.”
–2014년에는 난소암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당시 가발을 쓴 채 공식 석상에 서는 등 의연한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홍진경 참 가지가지 했다(웃음). 운 좋게 1기에 발견됐지만, 항암 치료는 6번 했다. 나는 막 오래 살려고 좋은 거 챙겨 먹고, 목숨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엄마가 아파하니까, 딸이 어리니까 건강해야 하는 거지. 내가 아프다는 게 나를 크게 흔들어 놓지는 못했던 것 같다. 머리가 없으면 가발 쓰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의연했기 때문에 잘 지냈다. 항암 치료 받으러 가면 병원에서 곡소리가 난다. 나는 항암 치료 받으러 갈 때 무한도전 전편을 내려받아서 갔다. 이걸 항암 치료 받는 내내 보면서 웃으면서 치료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되게 놀라셨다. 나 역시 웃음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한 계기가 됐다. 아, 웃음이라는 게 이렇게 멋진 거구나. 사람을 치유해주는구나 확실히 깨달았다.”
–공부왕 찐천재를 보니 학창 시절에 문학반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면.
“작가 백석과 그의 문체를 좋아한다. 굉장히 모더니스트인데 향토적이다. 그 두 가지 상반된 특징이 한 문장에 들어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캐릭터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중의 시선을 받는 연예인으로 살아오면서, 대중의 시선에 부합하려고 뾰족뾰족했던 개성이 동글동글해졌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 엄마 장례를 치르고도 유유자적하는 이방인 속 캐릭터가 다소 충격적이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카뮈를 좋아하면서 장 그르니에를 알게 되고, 국내 최고 카뮈 전문가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선생님의 글까지 찾아 읽게 됐다. 나의 책 읽기는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좋았던 순간을 꼽자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 공개할 수가 없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결혼 7년 차, 아이가 안 생겨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라디오 녹음 중 병원에서 임신이라는 전화가 왔다. 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좋았다. 지금도 잘 때 아이를 안으면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그 묵직함이 주는 행복함이 정말 크다.”
–일하는 엄마인데,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잡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정확하게 잡아서 산다. 한 주는 일만 하고, 그다음 주는 라엘이 엄마로만 산다. 일할 때는 엄마를 며칠씩 못 보거나, 온종일 통화 한번 안 할 때도 있다. 대신 일 안 할 때는 애한테만 집중한다. 서로에게 쉼표가 있어서 더 좋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이가 들어서도 개츠비처럼 사랑하고 싶고 모스크바 신사처럼 더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고 해서 웃음 포인트가 됐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사실 어떻게 나이 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뭐가 돼야겠다’ 이런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다. 언젠가 ‘태어났으니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인생이 이렇게 해야겠다고 해서 되지도 않더라.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연소를 시킨다는 생각이다. 하루살이처럼.”
–천주교 신자라고 들었다. 종교가 삶의 태도에 영향을 주나.
“당연하다. 그저 묵묵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믿는 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바르고 쓸모 있는 종으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최근 바보의나눔 재단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가장을 돕기 위한 긴급 지원 모금 캠페인도 하던데.
“이번 기부 활동은 가톨릭 재단과 함께한 것이지만, 사실 내가 하는 기부 방식은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주변부터 챙기자는 주의다. 주변에도 힘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런 분들은 내가 도왔다고 기자회견을 해주거나, 기부금 영수증을 써주지는 않으니까. 주변부터 챙기는 이런 방식은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더라(웃음).”
–라엘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
홍진경은 이 질문에서 한참을 뜸 들였다. 고민 끝에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엄마”라고 하더니, 인터뷰 말미에 다시 대답을 바꿨다.
“나는 우리 엄마가 바빠서 연락이 안 될 때, 딸로서 마음이 너무 좋다. ‘아, 우리 엄마 지루하지 않구나. 나름 바쁘게 돈도 벌고, 열정적으로 사시는구나.’ 우리 시어머님과도 식사 약속 한번 잡으려면 2주 전에는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웃음). 나도 언젠가 나이 들었을 때, 우리 라엘이한테 참 전화 연락 안 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건 결국 내가 내 삶을 산다는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