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년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최소 16년 앞선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실물/문화재청

1450년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최소 16년 앞선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실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32점 중 53점이 갑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글자들은 오는 11월 3일 열리는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에서 전시되며, ‘갑인자 추정 활자’가 아닌 ‘갑인자’로 소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 시대 금속활자 실물 중 가장 이른 자료다. 지난 6월 발굴 때는 아직 학술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갑인자 추정 활자’로 소개됐었다.

갑인자는 조선 초기인 1434년(갑인년·세종 16년) 왕명으로 만든 한자 활자다. 1420년의 경자자(庚子字)를 개선해 만든 조선 금속활자의 꽃이라 불리지만 현존하는 실물 활자로 확정된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현존 최고(最古)의 조선 금속활자는 1455년(세조 원년) 만든 을해자(乙亥字)였다. 강희안의 서체를 본떠 주조했고 1443년 훈민정음 창제 이후여서 한자와 한글이 모두 있다. 갑인자는 이보다 21년이나 앞선다.

갑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활자는 ‘불 화(火)’ ‘그늘 음(陰)’ 등 소자(小字) 48점과 ‘돌고무래 독(碡)’ 등 대자(大字) 5점이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갑인자로 확정지은 근거에 대해 “소자의 경우 갑인자로 1436년 인쇄한 ‘근사록(近思錄)’에 나오는 글자와 대조해 본 결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근사록’은 주자학의 교과서 같은 책으로 이 판본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이었다.

/문화재청

활자에 대한 박물관 측의 자문에 응한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고문헌연구소장)는 “터널 형태로 오목하게 파인 조선시대의 다른 활자와는 달리 네 면이 평평한 됫박 모양이라는 점에서 갑인자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이라고 분석했다. ‘세종실록’ 1435년 8월 24일 기록에 세종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형조참판 남지에게 중국 활자에 대해 조사해 오라고 명하면서 ‘우리나라 활자는 네 모퉁이가 평평하고 바르다(사우평정·四隅平正)’고 말했는데, 이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당대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개발에 참여한 갑인자는 조립식 활자로, 하루 인쇄량을 경자자의 두 배인 40여 장으로 늘렸다. 경자자에 비해 글자의 크기가 고르고, 납 대신 나무로 빈 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개량됐다. 또한 글자 획에 필력의 약동이 잘 나타나고 글자 사이에 여유가 있으며, 먹물이 까맣고 윤이 나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다운 조선 활자의 백미로 알려졌다.

갑인자는 발굴 당시 한글 활자, 물시계 부속 장치 주전(籌箭)과 천문 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 15세기 금속 유물과 함께 출토됐다. 경자자·을해자 등과 연대 차이가 크지 않아 과학적 연대 측정은 별 의미가 없어 이뤄지지 않았다.

옥 교수는 “인사동에서 나온 금속활자를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활자와 비교해 봤더니 상당 부분 형태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최근 갑인자 추정 활자를 소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전시를 시작했다. 향후 갑인자로 확정될 수 있는 활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