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에서 만난 장만희 구세군 사령관은 "국민 70%가 자선냄비 기부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가 있다"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고운호 기자

“2년 만의 오프라인 시종식(始鐘式)을 지난주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엄중하지만 세모(歲暮)의 따뜻한 정을 자선 냄비에 넣어주시는 분들의 보람과 신뢰, 만족도가 높아지도록 모금과 분배를 더욱 투명하게 하겠습니다.”

자선 냄비의 계절이다. 지난 1일 시종식을 갖고 31일까지 전국 17시도, 320여 곳의 자선 냄비 모금을 지휘하는 구세군 장만희(63) 사령관(교단장)은 지난 6일 이렇게 말했다. 연말이면 거리에 나타나는 구세군 자선 냄비는 1928년 서울 명동 거리에 처음 등장해 올해로 93년을 이어오고 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창립한 개신교 교단으로 세계 132국에서 군대식 조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장 사령관은 “매년 자선 냄비 모금을 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매년 익명의 기부는 빠지지 않는다. 작년의 경우, 제주도의 자선 냄비에서 3002만1000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다. 아무런 인적 사항도 없이 “감사하다. 수고하신다”는 편지 한 장만 들어있었다. 또 구세군이 운영하는 서울시립 ‘은평의 마을’에 거주하는 노숙인 700여 명이 “우리보다 불우한 이웃에게 써달라”며 4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장 사령관은 “봉투 붙이기 등으로 소액을 버는 분들의 정성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자선 냄비 풍경도 바뀌고 있다. 대표적 현상이 ‘동전의 실종’. 현금 사용이 줄면서 동전 모금은 예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구세군도 추세에 맞게 QR코드와 신용카드로도 모금하지만 아직은 시민들이 어색해 한다고 한다. 앞으로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술도 모금과 배분에 접목해 더욱 투명성을 높일 계획도 있다. 일반인들의 눈에 자선 냄비는 1년 중 12월 한 달만 보이지만, 구세군의 취약 계층 도움은 1년 내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장 사령관은 4대째 구세군 사관 집안 출신. 1977년 고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2016년 40년 만에 귀국했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던 중 소명을 느껴 구세군 사관이 됐고, 20여 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알코올·마약중독 재활 사업을 맡았다. 25개의 중고 물품 가게를 운영해 재원을 마련하며 3000명의 직원과 생활인(중독자)을 관리했다. 그는 “40년 만에 돌아오니 변화가 많았다”고 했다. 미국으로 이민 떠날 때엔 한국 집값이 미국의 10분의 1이었는데, 돌아오니 미국의 10배가 됐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재능도 세계적 톱(TOP) 수준으로 자라있었다.

그는 “구세군도 세상 변화에 맞게 영적(靈的)인 필요를 공급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핵심은 ‘(모금보다) 쓰는 데 더 철저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라고 했다. “시민들에게 요청하기 전에 그분들에게 확신을 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투명하게 운영했다고 자부하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더 투명해질 것입니다. 올해 모금 목표가 132억원이지만 액수의 크고 작음에 매달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