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가 문화재의 해외 유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문화재 반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사람들이 공항과 항만 등에서 근무하는 문화재 감정위원이다. 이들은 현재 상근 위원 28명(전문임기제 6명, 일반임기제 22명)과 비상근 위원 33명 등 모두 61명이 인천·김포·김해국제공항 등 19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6~2020년 5년 동안 문화재 283점의 해외 반출을 막았다.
최근 공무원의 임용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문화재 감정위원 중 전문임기제 6명의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이들의 계약은 오는 31일 끝난다. 전문임기제의 임기는 5년이며 2년 단위 계약 연장이 신청된 상태였다. 일반임기제는 임기 2년이다. 주로 역사학, 미술사학, 고고학, 서지학, 민속학, 박물관학 등 분야의 석·박사급 전문가들이 비정기적으로 선발된다.
감정위원 중 상근직의 21%가 감축되는 이번 조치에 대해 행안부 측은 ‘상황에 따른 탄력적 운용’을 내세운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 감정위원의 감정 물량이 1만9700건이었던 데 비해 2020년에는 2672건으로 86.4% 급감했고, 감축 대상 인력이 일반임기제·비상근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문화재 관계자들은 “오랜 현장 감정 업무로 얻은 감정위원의 경험과 감식안이 문화재 유출 방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이선제 묘지’의 경우 1998년 밀매단이 부산에서 일본으로 빼돌리려 했지만 가치를 알아본 김해공항 문화재 감정위원이 반출을 막고 당시 매뉴얼대로 실측도를 자세히 그렸다. 이 덕에 훗날 다른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유출된 묘지를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문성이 중요한 문화재 감정 업무가 비정규직 위주로 운용된다면 업무 공백이 생겨 문화재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행안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문화재 감정을 단순한 사무 업무로 간주하는 비상식적이고 근시안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2019년 기준으로 상근직은 전체 감정 물량의 87%를 담당했으며, 현재 회수되지 못해 국외 반출 위험에 놓인 국내 도난 문화재는 모두 2만4000여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