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론’을 가지고 얘기하는 서양화 쪽 사람들이 그는 부러웠다. ‘동양화도 논(論)이라 할 만한 것이 분명 있을 텐데...’ 김대원(67) 전 경기대 교수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1983)과 월전미술상(1995)을 수상하고 20차례 개인전을 연 중견 한국화가지만, 이론의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공부를 많이 하면 오히려 그림 그리는 데 지장이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늘 목이 말랐죠.”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 한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학위까지 땄고, 2010년 중화권의 대표적 화론 모음집인 ‘중국고대화론유편’을 16권 분량으로 번역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럼 우리는?’이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김 전 교수는 최근 ‘조선시대 그림 이야기: 조선화론집성’(4권·고요아침)을 펴냈다. 31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신라 최치원부터 조선 말 황현까지 271명의 지식인이 회화에 관해 논한 시문을 발췌해 집성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원문을 모은 ‘조선화론집성’ 영인본을 바탕으로 했지만 더 많은 분량을 새로 추가했고, 이 중에서 3분의 2를 직접 번역했다. 도판도 일일이 구해 실었다. “주말도 없이 하루에 다섯 시간씩 작업해서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보기에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는 ‘현상’과 ‘본질’에 있었다. “서양화가 빛과 그림자를 통해 보이는 것에 가깝게 그린다면, 동양화는 가장 가깝게 보이는 것을 강하게 그려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을 높이 샀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화론은 중국보다 더 섬세하고 유려하게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환쟁이’란 말로 미술을 멸시했다는 건 편견일 뿐, 서거정과 퇴계 이황을 비롯한 뜻밖의 미술 마니아들이 많았다.
“중국 그림이 호방하고 일본 그림이 장식적인 맛이 있다면, 한국화는 꾸밈과 욕심이 덜하고 진솔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감정을 동화시키는 매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중국화가 탄산음료, 일본화가 주스라면, 한국화는 구수한 숭늉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