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 예배엔 102세, 올해 1월 9일 예배엔 100세 어르신이 설교한 교회가 있습니다. 설교자들의 연세를 합하면 202세.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어르신들에게 맡긴 이 교회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있는 연세대학교회(담임목사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입니다. 이 교회는 작년 12월 26일 예배 설교는 김형석 명예교수, 올해 1월 둘째주 예배 설교는 신학대 교수를 지낸 유동식 박사가 맡았습니다. 각각 주제는 ‘예수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김형석), ‘성령의 역사와 복음적 실존’(유동식)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회는 말 그대로 대학교회입니다. 일반 교회와는 다른 점도 많습니다. 담임목사는 연세대 교목(校牧)이 2~3년씩 맡고, 연세대 교수, 학생, 동문, 지역 주민 등이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예배를 드립니다. 음악대학 교수 등은 오르간 연주와 성가대를 맡지요. 담임목사는 매월 첫 주일 예배 설교만 맡고 그 외의 주일 예배 때는 교우(교인)나 외부 강사를 초청해 설교를 듣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등 여러 교단이 뜻을 모아 연세대를 세웠듯이 이 교회는 특정 교단에 속하지 않습니다. 장로도 없습니다. 20여명으로 구성되는 교회위원회가 대소사를 결정합니다. 담임목사가 지명하는 교회위원은 2년 단임입니다. 박사, 교수 그리고 다른 교회에서 장로 등 직분을 맡았던 분들이 즐비하지만 교회 안에선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지요. 교육관 등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으니 ‘헌금 설교’도 없고, 교인들이 낸 헌금은 주로 학생들 장학금, 식권, 동아리 활동 등에 지원하고 성탄절 헌금은 전액 서대문구청 어려운 이웃돕기와 서대문구 어려운 교회 돕기에 쓴다고 하지요. 교회 예산에 편입하지 않고요.
교인 가운데 어르신 비중이 높은 것도 특징입니다. 지난해 103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 이사장을 비롯해 보건의료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방숙(1923~2020) 박사 등이 이 교회에 출석했지요.
올해 100세인 분이 세 분이고 90대 이상도 10여명에 이른답니다. 설 무렵 주일 예배 후엔 세배를 드리는데, 90대 이상만 세배를 받는다고 하네요. 이 교회에선 적어도 90대는 돼야 어르신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지요.
이 교회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가 연초 예배 설교입니다. 과거 연세대 교수 시절 연세대학교회에 출석했던 김 교수님의 연말 설교는 특별 초청이었습니다. 유 박사님은 2009년부터 매년 1월 둘째 주일 설교를 고정적으로 맡아오셨고요. 유 박사의 경우는 특히 2019년부터는 3부작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성령의 역사’ 였습니다. 저는 2020년 신년 예배 때 유 박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마지막에 “내년에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면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하셨지요.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신년 예배가 열리지 못해 그 설교가 1년 순연된 것이지요. 유머감각이 풍부한 유 박사는 올해 설교에서 “코로나가 나에겐 장수(長壽)의 계기가 됐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드리고 가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잔잔한 웃음을 주었지요.
저는 두 분의 설교를 현장에서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언론계 선배 한 분이 알려주셔서 유튜브로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202세’의 연륜과 삶의 깊이 그리고 지혜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두 분 설교 이야기를 알려준 선배님은 지난 12월 26일 예배 후 김형석·유동식 선생님이 예배당 앞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촬영한 사진도 보내주셨는데, 도합 202세 어르신들의 미소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먼저 김 교수님의 설교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열 네 살 평양 숭실중학생 시절 신앙 체험으로 시작하셨지요. 당시 성탄절에 목사님들의 설교를 닷새 연속 듣던 중 “비로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내 인생을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깨달음에 더해 김 교수의 신앙생활에 내용적 변화를 일으킨 인물은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도산, 고당의 설교를 듣고 김 교수는 “신앙의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축복은 누구에게나 임하지만 각자 가진 그릇만큼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었답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김 교수가 ‘나와 교회’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도산·고당 두 분은 민족과 나라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무렵 김 교수 선친도 비슷한 말씀을 주셨답니다.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나와 내 가정만 생각하면 그만큼만 성장하지만,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며 살면 너도 모르는 동안에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때 김 교수는 신앙인으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교회 걱정을 하신 적 없고, 교리를 말씀하신 적 없다”고 했습니다. 또 “교회는 교리가 아니라 진리를 깨닫는 곳이어야 한다” “교리에 붙잡히면 예수님을 떠나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서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평소처럼 “죄송합니다만” “미안합니다만”이란 표현을 섞어서 35분간 설교했습니다.
1월 9일 유 박사님의 설교 역시 100년을 살아온 개인의 체험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풀어냈습니다. 박사님의 설교는 한 마디로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은 없다. 성령의 역사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날 ‘구원의 원체험(原體驗)’ 계기로 8·15 해방과 6·25전쟁을 들었습니다. 유 박사는 “해방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우리는 일본 이름에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6·25때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지금 김정은 따라다니며 손뼉 치고 있을지 모른다”며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해 실감하려면 우리의 역사를 조금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 성령의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되게 해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 박사는 이어 “내 신앙의 핵심은 요한복음 14장 20절”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은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는 내용이지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지만 너희는 나를 볼 수 있고, 내가 살아있고, 너희들도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유 박사는 “이 구절 하나만 이해하면 역사와 인생이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교를 마쳤습니다.
두 분은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35분간 꼿꼿이 서서, 중언부언 없이 정연하게 설교했습니다. 마치 ‘100세 시대’의 바람직한 예고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회의 어른을 귀하게 모시는 좋은 전통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