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요괴(妖怪)의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게게게의 기타로’ ‘포켓몬스터’에서 ‘요괴워치’까지 숱한 요괴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일본산이다. 그러면 한국에는 요괴가 별로 없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한국고전소설 연구자인 이후남(36) 박사가 말했다. “지금까지 고전소설 77편에서 모두 158종의 요괴를 찾아냈어요.” 그는 신간 ‘요망하고 고얀 것들’(눌와)에서 이들 중 20여 종을 소개했다. 지금껏 보기 드물었던 한국 요괴 열전(列傳)인 셈이다.
책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요괴들의 향연이다. 사람을 속이며 변신하는 여우나 원숭이·호랑이 요괴가 있는가 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며 미인을 납치하는 금돼지 요괴, 여섯 개 팔로 창칼을 휘젓는 키 15m의 은행나무 요괴, 물속에서 독을 내뿜는 집채만 한 털뭉치 요괴도 있다.
일본 요괴가 선악 개념이 없는 존재인 데 비해 ‘K요괴’는 명백한 악의 화신이다. “하지만 그저 못되고 허무맹랑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의 욕망과 상상력이 표현된 대상이기 때문이죠. 결국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거예요.”
요괴는 유교 이념 속 보통 사람들이라면 감히 꿈꾸지도 못할 행동을 마음껏 펼친다. 멧돼지 요괴 ‘산저’는 눈에 띄는 건 뭐든지 먹어치우고, 사대부 여인으로 둔갑한 ‘구미호’는 미운 본처를 제거하고 온갖 남자들을 유혹하며, 인육으로 음식을 만드는 여장부 요괴 ‘올출비채’는 화가 나면 남편과 시동생을 마구 구타한다. 아직 현실 속에선 불가능하던 성형수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먹으면 외모가 바뀌는 개용단(改容丹)이란 약을 쓰는 요괴도 있다.
욕망의 단계가 더 높아지면 금전, 권력, 인정 욕구로 나아간다. 여우 도사 ‘신묘랑’은 흥신소를 차려 재물을 모으고, 월나라 세 요괴는 국정에 참여해 요직을 맡는가 하면, ‘적룡’은 사람들로부터 제사를 받으며 숭배 받기를 원한다.
이 박사는 “한국 요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거리 두기를 하며 소굴에 은둔하기 때문에 ‘뒤떨어진 사회성’과 ‘공감 능력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때론 가부장제에 반발하고 질투심을 숨기지 않는 등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정작 주인공은 좀처럼 사회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요괴는 ‘히어로보다 매력적인 빌런’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18년 박사 논문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 연구’를 쓴 이 박사는 “기존 연구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고, 주변에서도 처음엔 ‘왜 그런 주제를 잡았느냐’고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요괴가 콘텐츠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했다.
이번 책에 소개된 고전소설 중 일반인에게 익숙한 책은 ‘전우치전’ 하나뿐이다. ‘옥란기연’ ‘삼강명행록’ ‘윤하정삼문취록’처럼 제목도 생소한 수백 종의 고전소설들이 콘텐츠의 바다처럼 남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