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장만희 사령관이 앰뷸런스 소원재단 김신 이사장에게 호스피스 차량을 기증하고 있다. 구세군은 단순히 차량만 기증하는 차원을 넘어 소원재단 활동을 함께하며 운영까지 지원하는 협력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앰뷸런스 소원재단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나들이 소원을 도와 드리는 ‘앰뷸런스 소원재단’(이사장 김신 전 대법관·이하 소원재단)에 ‘날개’가 생겼답니다. 구세군(사령관 장만희)은 지난해 연말 자선냄비 모금액 중 일부로 호스피스 차량 2대를 구입해 지난 2월 28일 소원재단에 기증했습니다.

소원재단은 ‘오마이갓’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소아암, 말기암 때문에 혼자 힘으로 나들이가 어려운 환자들의 마지막 나들이 소원을 도와드리는 단체입니다. 개신교 가정사역 분야를 개척해온 사단법인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님이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모델을 한국에 들여왔지요. 지금까지 출동해 도와드린 소원은 소박했습니다.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노을 보기, 손자와 단풍 놀이, 서울 남산 야경 구경, 병상 세족식(洗足式) 등이었습니다.

구세군이 기증한 호스피스 차량의 외부와 내부. /앰뷸런스 소원재단

리스트를 놓고 보면 ‘별 것 아니네?’ 싶기도 하실 겁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이런 일이 말기 환자에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차량이 중요합니다. 환자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사실상 앰뷸런스 수준의 승합차이어야 합니다. 이 차량에 환자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과 전현직 소방대원과 가족이 타고, 또다른 지원 차량에는 가족 나들이 전 과정을 기록해드리는 사진 봉사자 등 자원봉사자가 동승해 환자를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모시고 나들이합니다.

소원재단은 지난해 가을 손자와 단풍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환자의 나들이 소원을 들어 드렸다. /앰뷸런스 소원재단

1호 차량은 소원재단이 자체 예산으로 중고 승합차를 개조해 마련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차량으로 서울과 수도권 환자들의 나들이 소원을 도와드렸습니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너무 심해 현재는 조심스러워 쉬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정점을 찍고 일상이 회복되면 환자들의 나들이 소원 수요도 늘 것입니다. 지난해말 한창 요소수 부족 사태가 터졌을 때 이 차량도 환자를 모시러 가다가 길에서 멈추는 바람에 자칫 나들이가 무산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차량 한 대만으로는 불안한 것이지요.

그래서 소원재단은 연말에 구세군에 호스피스 차량 지원을 신청했고, 2대를 기증받게 됐습니다. 신청을 받은 구세군은 차량뿐 아니라 운영비까지 지원하기로 했답니다. 기증식날 장만희 사령관은 “한 인생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야 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호스피스 차량은 자선냄비로 모아진 국민들의 응원이며 격려일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구세군이 차량뿐 아니라 운영비까지 지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구세군 관계자에게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그분 이야기는 “구세군도 호스피스 병원을 방문해 봉사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송 목사님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매우 구체적이고, 국내에서는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사업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차원을 넘어 ‘협력사업’ 차원에서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마지막 나들이 선물을 드리는 새 길 개척에 구세군이 함께하겠다는 의지라는 것이지요. 구세군도 전국에 8개 지방 본영이 있고 인력이 있기 때문에 ‘소원재단’이 지방으로 봉사 영역을 확대할 때 구세군 인력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가족과 바닷가 노을 구경이 소원이었던 환자의 소원을 들어드렸다. 말기 환자들의 소원은 뜻밖에 소박한 경우가 많다. /앰뷸런스 소원재단

김신 전 대법관이 소원재단 이사장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도 예사 인연은 아닌 듯합니다. 송 목사와 김 전 대법관은 젊은 시절부터 부산에서 크리스천 포럼 활동 등을 통해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사이입니다. 김 전 대법관은 어린시절 소아마비 후유증을 겪어 장애인과 교통 약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입니다. 송 목사의 이사장직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합니다.

사실 소원재단은 법률 수요가 많습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소원재단은 지금까지 없던 영역을 개척하고 있기에 관련 법이 아예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소원재단의 차량은 경광등을 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앰뷸런스는 환자를 의료시설로 빨리 이송하는 게 목적이었지, 바닷가나 전시장·남산 등으로 나들이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법관은 소원재단이 법률적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을 줄 예정입니다. 차량 기증식날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복지 선진국처럼 민간에 의해 교통약자들이 생애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는 일이 시작된 것은 감격스런 일”이라며 “마침 구세군의 차량 기증으로 이 운동이 큰 활력을 얻게 됐고, 이번 일을 계기로 호스피스 차량을 긴급자동차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등 법률 개정 추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김미애 의원도 입법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소원재단은 새로 선물 받은 차량 두 대 중 한 대는 부산 지역에 일단 배치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두 대는 경기 양평에 대기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지역, 한 대는 영남을 중심으로 환자 소원 나들이를 도와드리게 되지요. 한 대가 더 생긴다면 제주도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가능하다면 소아암 환자 전용으로 장난감이나 어린이 친화형 차량도 갖추고 싶어합니다. 이건 소원재단의 소원입니다.

소원재단은 이번 금요일에도 출동 예정이랍니다. 한 위암 말기 환자가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하늘 한 번 보고 싶다”고 요청해 2시간 정도 나들이를 도와드릴 예정이랍니다. 미지의 길을 열어가는 소원재단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