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유물이 지나온 시간을 만지며 그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큐레이터의 땀과 열정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최선주 관장 제공

‘못난이’라 부르는 높이 18.12m의 큰 불상이 있다. 은진미륵이란 별칭으로 익숙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거대하기만 했지 조형미는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었던 이 불상 앞에서, 1983년 대학생 최선주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위엄 있는 표정과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했죠. 그 충격이 저를 박물관으로 이끌었습니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뒤 박물관 큐레이터(유물을 수집·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로 일해 온 최선주(59)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최근 책을 한 권 냈다. 30년 동안의 박물관 생활을 회고하는 ‘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주류성)다.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의 ‘경복궁 야화’ 이후 이렇듯 우리 박물관의 비화를 기록한 책은 드물었다.

최 관장은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사할 때 전시실 벽면을 통째로 허문 이야기를 소개했다. 높이 2.88m. 무게 6.2t에 이르는 고려 시대 대형 철불 ‘철조석가여래좌상’ 때문이었다. 벽을 부순 뒤 크레인으로 무진동 트럭에 싣는 과정을 거쳐 옮겨야 했는데, 그는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철재로 골조를 만들고 화강암을 씌운 불상 받침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기이한 발견도 많았다. 1997년 전북 임실의 옛 진구사 터를 답사하다 법당으로 쓰던 집에 들어갔다. “작은 방문 틈새로 갑자기 저를 째려보는 듯 강렬한 시선을 느꼈어요.” 통일신라 시대의 비로자나불상이 거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치돼 있었고, 이후 그의 노력에 힘입어 전북 유형문화재가 됐다.

2012년 국립춘천박물관장 시절 국보 ‘한송사 터 석조보살좌상’과 관련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돌아온 이 불상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출토지인 강릉 한송사 터를 조사했다. “군부대 안 모래로 뒤덮인 곳에서 그 보살상을 받치던 석조 대좌 2개가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고요. 그걸 참고해서 대좌를 새로 만들 수 있었죠.”

은진미륵과는 인연이 어땠을까. 최 관장은 불상 머리의 면류관 같은 장식에 주목하고 ‘고려 광종이 옛 후백제 땅에 제왕의 권위를 세우고 중앙집권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세운 것’이란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2013년 은진미륵을 직접 조사해 보니 색칠한 줄만 알았던 눈동자가 검은 색 점판암을 정교하게 조각해 끼워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심장이 터질 듯했다’고 한다. 은진미륵은 보물 지정 55년 만인 2018년 국보로 승격됐다.

최 관장은 “큐레이터는 지나온 시간을 만지며 잊힌 유물에 빛을 밝혀 주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일터인 박물관은 아이 없이 어른들만 가도 충분히 재미있는 곳임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