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백서'를 낸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한복 공정(工程)’과 ‘김치 공정’ 등으로 물의를 빚은 중국의 한국 역사 침탈은 단기간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이미 40여 년 전부터 4단계의 수순을 밟아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길수 고구리·고리연구소장(전 서경대 교수)은 최근 동북공정 20주년을 맞아 출간한 ‘동북공정 백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1979년 이전만 해도 중국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를 당연히 ‘조선의 역사’라고 봤고, 1936년 발행된 백과사전 ‘사해(辭海)’에도 그렇게 명시했다. 1949년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963년 저우언라이 총리는 “압록강 서쪽이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라고 말했다.

◇1단계(1979~1995): 역사 침탈 논리의 형성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자국 내 여러 민족의 역사 역시 중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을 본격화했다. 1980년대 초에는 고구려의 전반부는 중국사에 속한다는 논리가 출현했다. 수도가 현재 중국 영토 지안(集安)에 있다는 이유였다. 1985년엔 부여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라는 논문이 나왔고, 1993년에는 훗날 동북공정의 주역이 되는 쑨진지(孫進己)·겅톄화(耿鐵華) 등의 학자가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발표했다.

◇2단계(1996~2000): 1차 국책 역사 침탈 추진

중국 공산당이 직접 관할하는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 ‘고구려 역사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의 완결판인 ‘중국 고대 고구려 역사 총론’이 2000년 완성돼 “고구려는 중국 동북 역사의 소수민족 정권” “고조선·신라·백제도 중국의 번국(藩國·제후의 나라)”이라는 주장을 세웠다.

◇3단계(2001~2009): 2차 국책 역사 침탈 추진

한국 고대사의 ‘중국 편입’을 본격화한 이른바 동북공정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공식 추진됐다. 2004년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지안과 환런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에 들어갔고, ‘중국의 지방 정권 고구려’라는 안내판을 달았다. 동북공정은 한국에 알려져 국민적 항의를 일으켰고 한·중 정부는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구두 합의를 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침탈 연구는 계속됐으며 동북공정은 2년 연장돼 2009년에야 마무리됐다.

◇4단계(2010~현재): 침탈한 역사를 자기 역사로 굳히기

동북공정 관련 학술지인 지린성 사회과학원의 ‘동북사지’는 2017년 폐간됐다. 서 교수는 “이제 침탈한 역사를 ‘국사’(중국사)로 쓰는 작업으로 전환해 역사 침탈의 마지막 단계인 ‘굳히기’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百度)의 백과사전에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중국 역사 속 국가’로 서술했고 신라·고려·조선은 ‘번속국’으로 규정했다.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으며, 한복·김치 공정 역시 이런 상황에서 출현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