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처신도 제대로 못하는데, 사회에 가르침을 어떻게 줄 수 있겠노?”
“난 주제 넘은 생각은 없고, 말할 여지도 없습니다. 새 정부가 잘 하도록 바라고 두고 볼 일이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정부도 바뀌는데 우리 불교계도 새 정신으로 자정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내가 잘해야 겠다 싶지, 새 정부에 대해 바라는 것은 특별히 없습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경남 양산 통도사. 대한불교조계종 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된 성파(性坡·83) 스님의 언론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오늘(30일) 추대법회(취임식)를 앞두고 언론과 첫 만남 자리였지요.
종정은 조계종의 최고 어른입니다. 간담회에서 기자들은 새 종정 스님에게 거듭 ‘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대선으로 분열된 사회에 대한 ‘한 말씀’, 새 정부에 대한 당부 ‘한 말씀’, 코로나와 산불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에 위로 ‘한 말씀’ 등을 여쭸지요. 성파 스님의 대답은 번번이 “내 처신도 제대로 못하는데...” “주제 넘은 일” “내가 잘해야지...” “사회를 보고 어떻게 하라고 할 재간은 없고...”이란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남에게 뭐라 하기 전에)나부터 잘 해야지”였습니다. 스님은 평소에도 ‘법문’을 즐기지 않습니다. 남에게 해줄 말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성파 스님의 이런 ‘나부터’는 작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조선일보와 인터뷰할 때에도 같았습니다. 당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스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물으면 안 됩니다. 왜정(일제강점기)과 6·25 등을 겪으며 온갖 고생을 한 우리 같은 사람은 청년들의 어려움을 들어도 ‘우리 때보단 다 좋아졌구만, 뭘 이 정도를 가지고...’ 이럽니다. 해법이 안 나와요. 청년들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다 보면 해답도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라떼’(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가 아니라 ‘공감’과 ‘경청’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덕담 ‘한 말씀’도 부탁드렸었지요. 역시 성파 스님은 “저는 남에게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저를 향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할 뿐”이라며 “모두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데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였지요.
이번 간담회의 말씀과 너무나 닮은꼴이지요?
사실 저는 작년 인터뷰에서 스님의 이 대답을 듣고 다소 머리가 띵했습니다. 보통 종교인 특히 종교 지도자 인터뷰에서 ‘한 말씀’을 여쭸을 때 ‘나부터 잘하겠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통도사의 가장 어른인 ‘방장(方丈)’ 성파 스님은 “나부터 잘하겠다”고 답했던 것이지요.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사회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느껴졌지요. 또한 속세에서 하루하루 땀흘려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삶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4일 간담회에서 스님은 이런 말씀도 했습니다. “우리 종단, 절에서는 대표가 종정이지만 일개 산승(山僧)이 언론 간담회를 한다는 것은 격(格)에 안 맞는다 생각합니다. 기왕 오셨으니 차나 한 잔 하시고 이야기 조금 하고 끝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스님이 “저나 잘하겠습니다”라며 모든 대답을 마친 것은 아닙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코로나보다 악랄하고 무서운 것이 악심(惡心)” “큰 권력 아니라 개개인이라도 악심 아닌 선심(善心)을 품으면 춘풍이 불고 꽃이 피고 잎이 피듯이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은 일. 내가 말 안 해도 잘 알 것.” “‘악을 짓지 말고 착한 일을 봉행하라’는 것이 도(道). 세 살 아이도 알기 쉽지만 팔십 먹은 사람도 행하기 어려운 것.” “나만 맞고 남은 틀리다는 인상(人相)과 아상(我相)을 무너뜨리고 공덕의 숲을 키워야 한다. 입도끼로 쪼아대고 소리 없는 총을 쏴대면 나라와 백성이 편하지 않다” 등의 말씀을 했습니다. 어렵지 않고 쉬운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은 여러 차례 “대답이 시원치 않재?”라며 웃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날 간담회 문답 중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위로’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해볼수도 없고 항상 걱정하고 있어요. 산골에 앉아서 애만 태우는 중입니다.” 항상 걱정하고 애태우는 간절한 마음, 보통 국민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요.
스님은 간담회에서 “은사 월하 스님은 항상 ‘평상심이 도(道)’라 하셨다. 상식이 도라는 뜻이다. 평생 그 가르침을 지키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출가 후 때론 경전을 읽고, 때론 글씨를 쓰고, 때론 참선하며 살아왔다”며 “종정 된 후에도 나를 살아가는 대로 놔뒀으면 싶다. 니 뭐하노? 이러냐 저러냐 하지 말고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성파 스님은 종정 취임 후에도 평생을 지내온 통도사에서 살 예정입니다.
저는 성파 스님의 “나부터”라는 말씀이 “나는 산중에서, 세상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도(道)이니 열심히 살아봅시다”라는 권유로 들렸습니다.
‘한 말씀’을 즐기지 않는 성파 스님이지만 30일 추대법회에서는 종정으로서 ‘법어(法語)’를 발표하게 됩니다. 어떤 ‘한 말씀’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