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법문은 많이 준비했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싹 다 잊어버렸어요(웃음). 그래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로 법어(法語)를 하고자 합니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30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추대 법회에서 법어를 발표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 추대 법회(취임식)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조계사. 법상(法床)에 오른 종정 성파(性坡) 스님은 자료집에 2쪽 분량으로 준비한 법어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쉬운 말로 ‘오늘을 기점으로 과거를 다 잊고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가 새로 출발하자’는 즉석 법어를 발표했다. 조계종의 법통(法統)을 계승하고 최고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종정 추대 법회에서 즉석 법어는 매우 드문 파격이었다. 조계사 마당을 가득 채운 3000여 불자(佛子)는 새 종정의 즉석 법어에 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세계의 평화와 나라의 융성과 만민의 안락을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며 말문을 연 성파 스님은 전통 문화를 보존해온 한국 불교의 역사와 호국 불교의 전통을 강조한 후 ‘새 출발’ 법어를 시작했다.

스님은 “계절은 봄은 분명히 왔지요? 꽃이 피었지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왜 그리 냉각한지, 왜 그리 안 풀리는지. 왜 그리 꽃을 못 피우는지”라며 “얼어붙은 마음을 따스한 화합하는 기운으로 인간의 얼굴에 웃음꽃이 항상 필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불자의 의무와 책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가지 않으려 해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나이 칠십, 팔십이 되면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 싹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서 인생의 길을 새로 출발하는 기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종정 추대를 축하하러 오신 분들께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효과가 있다면 여러분들에게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성파 스님은 “초발심으로 돌아가자, 이때까지 있었던 것을 싹 지워버리고 새로 출발하면 전부 우리 마음과 가정, 사회, 국가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라며 법어를 마쳤다. 스님은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날 법어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마무리하고 화합과 통합의 새 시대를 열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날 추대 법회는 봄비가 간간히 흩뿌리는 가운데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여야 정치인,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등 이웃 종교 지도자, 이수성 전 총리와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전국 사찰의 스님과 신자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봉행사에서 “우리 모두는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새로운 희망을 위해 종정 예하를 중심으로 사부대중은 더욱 결집하자”고 말했다.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은 추대사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갈라진 물줄기를 한곳으로 흐르게 하고 상처 난 사람의 마음에 진실의 대비(大悲)를 내리게 하소서”라고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