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은 뒤 매일같이 집 근처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펴들던 그는 문득 ‘좀 더 체계적으로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법대를 나와 금융계에서 일했으나 사실 어린 시절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분야는 역사였다. “그래, 이제라도 제대로 공부해서 장편 역사소설을 써 보자!” 주변에선 ‘단편소설 하나 써 보지 않은 사람이 무슨 수로 그걸 집필하겠다는 거냐’고 혀를 찼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든두 살 신인 작가가 생애 첫 소설로 다섯 권짜리 대하역사소설을 냈다. 원고지 6600장 분량의 ‘황금삼족오’(나남)를 쓴 김풍길<사진> 전 한국금융연수원 법률교수다. 정년 이후 22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결과물이다.
제목 ‘황금삼족오’의 삼족오(三足烏)는 하늘의 신령한 뜻을 전한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사(正史)에서 이름마저 잊힌 서기 645년 안시성 대첩의 영웅 양만춘이다. 북방 초원과 실크로드를 거쳐 중앙아시아까지 먼 길을 다녀온 양만춘은 동아시아 최강의 중국 황제 당 태종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나라를 구한다. 양만춘의 중앙아시아행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벽화에 고구려 사절의 모습이 보이니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다.
책 속에는 긴 세월 동안 쌓은 노고의 흔적이 보인다. 김 전 교수는 ‘자치통감’ ‘수서’ 같은 중국 측 사료는 물론 국내 대부분의 고구려 관련 논문, 실크로드와 고구려 축성술에 관한 책까지 섭렵했다. 도서관에서 복사한 자료들만 상자 4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의 우리가 고구려에 대해 주목할 점이 많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민족을 포용한 다문화 국가였고, 5부 귀족회의 합의에 따라 통치하는 공화정 국가였으며, 온달처럼 가난한 백성이 장군까지 오를 수 있었던 열린 사회였다”는 것이다. “마을마다 교육기관이 있어 젊은이들이 활쏘기와 글을 배운다는 중국 측 기록도 있죠. 대단한 교육열을 지닌 문명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국수주의는 경계했는데, 양만춘이 쏜 화살에 당 태종이 한쪽 눈을 맞았다는 얘기는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지어낸 ‘신화’라고 했다. “양만춘이 평범한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단결시킨 것이야말로 정말 주목해야 할 승리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