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53조는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고 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언어학자 김세중(62) 박사는 “이것은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라고 말했다.

‘민법의 비문’을 쓴 김세중 박사는“국민은 문법적으로 정확한 민법전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발생하다’란 단어는 목적어가 필요 없는 자동사이기 때문에 ‘효력을 발생한다’가 아니라 ‘효력이 발생한다’로 써야 맞습니다. ‘화재를 발생했다’ ‘환자를 발생했다’고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헌법 57조의 ‘금액을 증가하거나’란 표현도 ‘증가하다’가 자동사이기 때문에 ‘금액을 늘리거나’나 ‘금액을 증가시키거나’로 써야 한다.

그나마 헌법은 비문이 이 정도지만 민법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김 박사는 최근 연구서 ‘민법의 비문’(두바퀴출판사)을 냈다. 대한민국 민법의 문장을 1조부터 1118조까지 샅샅이 조사한 결과 200개가 넘는 비문을 찾아냈다. 주어나 목적어가 없는가 하면 주격조사를 쓰지 않거나 동사에 맞지 않는 보어를 쓰는 등 잘못된 문장이 수두룩했다. 162조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완성하다’가 목적어가 필요한 타동사이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나 ‘시효가 소멸된다’로 써야 한다.

엉뚱한 조사를 쓴 경우도 많았다. 2조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에서 ‘좇다’에 맞는 조사는 ‘을/를’이므로 ‘신의를 좇아’라 해야 하지만 ‘에’로 잘못 쓴 것이다. 김 박사는 “일본 민법에 나오는 ‘信義に從い’란 표현을 기계적으로 옮기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민법은 1948년 제정 작업에 들어가 1958년 공포되고 1960년부터 시행된 것이다. 김 박사는 “민법 속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1940~50년대의 것이고, 일본 민법을 많이 참고하다 보니 일본어의 단어와 조사를 무비판적으로 옮긴 결과 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속출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30차례 이상 민법을 개정했는데도 비문은 수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시를 받아’로 써야 할 것을 ‘지시를 받어’(195조)로 표기한 오자까지 그대로 있다. 2015년과 2018년 문장과 용어를 고친 민법개정안이 각각 19대와 20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모두 통과되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났다.

김 박사는 “법조문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법조인과 법률 전문가들이 이렇게 이상한 문장을 자신들만의 전문적인 말투로 여기는 것이라면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온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법조문에서 잘못된 문장은 큰 장벽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