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물을 인사동에서 살 때가 50년 전이었을 거예요.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파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건 생각이 납니다. ‘서울 변두리 집 두 채 값은 된다’고 말이죠.”
김종규(83) 삼성출판박물관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유물’이란 충남 논산 돈암서원에 있던 책판 54점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1548~1631)이 주자의 ‘가례’를 증보·해석한 ‘가례집람’을 비롯해 ‘사계선생연보’ ‘사계선생유고’ ‘사계전서’ 등을 펴내는 데 쓰인 귀중한 유물이다. 김 관장은 최근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 책판들을 모두 원 소장처인 돈암서원에 기증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기도 한 김 관장은 2019년 돈암서원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을 보고 ‘아! 그 책판’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장생은 조선 후기 대학자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이기도 하죠. 예학(禮學)을 집대성했다는 큰 의미를 지닌 책인데... 이사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후대와 공유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책판들은 1990년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도록에도 실릴 정도로 아끼는 유물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증이 늦어지는 동안 ‘딱 한 점만 빼고 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딸자식 시집보낼 때 한 명만 빼고 보낼 수 있나, 에라!’하고 결심을 굳혔고, 지금은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문화계 대부(代父)’ ‘마당발’로 불리는 김 관장은 한국 첫 출판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세워 33년째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박물관이 1000개는 있어야 한다’는 고(故) 이어령 교수의 말에 힘을 얻어 설립을 앞당겼다고 한다. 그는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며 “이번 기증이 앞으로 더 많은 문화재 환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