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김수환 추기경은 눈을 감고 깊은 묵상에 잠겨있다. 김 추기경 뒤로 신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1987년 4월 16일, 주님부활대축일(부활절)을 앞둔 성주간 미사였다. 이때는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 개헌(改憲) 논의를 중단시킨 이른바 ‘4·13 호헌(護憲) 조치’를 발표한 사흘 후. 그때부터 그해 6월 말 6·29 선언까지 이어진 거대한 민주화 운동의 전야(前夜)였다. 묵상하는 김 추기경의 표정엔 깊은 고뇌가 배어있다.
사진작가 서연준(65)씨가 23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앞 ‘갤러리1898′에서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을 열고 있다. 1984~1988년 촬영한 미공개 흑백사진 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서씨는 “당시 충무로 사진 스튜디오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명동성당이 가까워 수시로 찾아 미사와 미사 전후의 김 추기경님을 촬영했다”고 말했다. 전시작 중에는 1986년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한 구국 미사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2김(金)이 참석한 장면, 김 추기경이 서울 혜화동 신학교에서 어린이를 보고 두 팔 벌려 반기며 환히 웃는 모습 등이 있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한국이 민주화 열기에 휩싸인 때였고, 그 중심에 김 추기경이 있었지만 서씨는 시사·정치적인 작품보다는 성당 안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당시 세례받은 지 2년 된 천주교 신자였던 서씨는 제대 앞 계단까지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서씨는 “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김 추기경님은 제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면 ‘또 왔냐’는 눈빛을 보이시며 촬영을 제지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서씨는 당시 700컷 정도를 촬영했다. 월급 6만원 받을 때 한 롤에 2000~3000원씩 하던 필름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시할 생각도 없이 그냥 김 추기경이 좋아서 촬영했고 필름은 현상만 마친 상태로 보관했다. 서씨가 광고 사진을 촬영하는 개인 스튜디오를 마련한 후로는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발길도 뜸해졌다.
옛 필름을 다시 꺼낸 것은 작년. 올 6월(음력 5월 8일)이 김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이란 사실을 문득 깨닫고 전시를 준비했다. 서씨가 다니는 포이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낸 구요비 주교도 전시를 권하고 격려했다. 서씨는 “4개월에 걸쳐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면서 매일 추기경님을 뵐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확인해보니 김 추기경이 웃는 모습은 700컷 중 단 3컷밖에 없었다. 서씨는 “망원렌즈를 통해 본 김 추기경님의 모습은 항상 교회와 한국 사회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며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낸 한국 사회가 김 추기경님의 사진을 보면서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전시 후에는 대구 범어성당 내 드망즈갤러리와 경북 군위의 김수환추기경기념관으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