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부음 기사에서 디폴트값과도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별세(別世)’입니다. 이것은 돌아가신 분을 높이는 표현이 아닙니다. 부음난에서는 누가 돌아가셔도 ‘별세’라는 표현을 씁니다. 중립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그럼 ‘사망(死亡)’이란 표현은 어떨까요. 이건 주로 사건사고로 돌아가신 분에 대해 주로 숫자와 함께 쓰는 말입니다. ‘홍수로 20명 사망, 5명 실종’과 같은 표현이죠. 그런데 자연사한 분에게도 가끔 ‘사망’이란 표현을 씁니다. 대체로 그렇게 표현된 특정인은 과거에 권력자였거나 그 친인척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런 표현은 그걸 쓴 언론사에서 몹시 그 인물을 싫어한다는 뜻과도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며칠 전 SBS의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9회는 5·18의 원인에 대해 말하던 중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어.”
재작년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걸 본 한 20대 지인이 이런 말을 했죠. “박정희 참 나쁜 사람이었네요.”
코로나19 사태로 극장가가 위축된 속에서도 ‘남산의 부장들’은 관객 470만 명을 넘기며 흥행 몰이를 했습니다. 1979년 10·26 사태를 그린 이 영화에선 관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악인’으로 인식하게 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대사가 있었습니다.
영화 속 박정희는 10·26 직전 부마항쟁 보고를 들은 뒤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합니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총을 쏘며 “각하를 (5·16) 혁명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라고 일갈하죠.
하지만 이 두 대사 모두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앞의 대사는 오직 김재규의 법정 진술에서만 보이는 일방적인 주장이며, 뒤의 대사는 현장에 있던 생존자 네 사람(김재규·김계원·심수봉·신재순)의 증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날조였습니다. 영화와 달리 김재규는 5·16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영화가 주인공으로 설정한 김재규의 대통령 저격을 ‘학살을 막기 위한 정의로운 의거’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독재자를 처단한 의로운 인물’이라는 진보·좌파 진영의 김재규 띄우기는 10·26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2008년에는 김재규를 안중근 의사에 견주는 글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안중근은 ‘반(反)침략 거사’, 김재규는 ‘반독재 거사’를 했다는 것이죠.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기본적으로 이 같은 시각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에게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의 유사성’에 대해 우스개소리처럼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둘 다 ‘유신’과 관련이 있었고 ‘국가 근대화’를 했다. 모두 ‘무인’ 출신이고 ‘키가 작다’. 이 사람들이 꼭 70년(1909년과 1979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날(10월 26일)에 저격을 당했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유사성, 사실은 두 사람의 수 많은 요소 중에서 일부 공통점만을 가지고 말한 농담일 뿐입니다. 그 다음에 저는 ‘진담’을 꺼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뚜렷이 다르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를 치른 뒤 남산(중앙정보부)으로 갈지 용산(육군본부)으로 갈지 고민하는 따위의 일은 잠시도 한 적 없다. 안중근과 김재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선열에 대한 모독이 된다.”
당연한 말을 하나 덧붙이자면, 박정희는 ‘근대화’에 앞장섰지만 이토 히로부미와는 달리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누군가는 ‘월남 파병은 침략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 파병이 과연 남베트남(월남)과 북베트남(월맹) 중 어느 나라의 국권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인지요.
‘박정희가 악인이기 때문에 그를 죽인 사람은 의사(義士)가 된다’는 논리는 현대사를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좌파 진영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식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인식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주도 세력은 친일파이자 독재 세력이며, 그 반대편에 있는 독립운동·민주화 세력이 줄곧 투쟁해 왔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 임시정부 출신인 이범석과 신익희와 지청천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 정부의 요직에 임명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백년전쟁’식 역사인식은 사실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젊은 세대에게 주입하기엔 대단히 위험한 시각입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추진했다 실패한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교과서에서 보듯, 지난 20년 동안 역사 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을 둘러싼 공방에서 보수·우파 진영은 번번이 패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이제 대중매체인 영화까지 ‘백년전쟁’식 역사 인식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0·26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젊은 세대에겐 김재규는 ‘이병헌처럼 시대를 고뇌하는 지적인 인물’, 박정희는 ‘야비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이미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가 사망했다’는 표현은 별 문제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상의 인물 중에는 결코 ‘사망’이라는 한 단어로 간결하게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 종종 있습니다. 과(過) 못지않게 거대한 공(功)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나라 자체를 이뤘다고 할 인물도 있습니다. 그저 독재만 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론 우리에게 물과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한 듯 여겨질지도 모르는 그 모든 번영의 기틀을 갖춰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게 최소한의 언어적 예의는 갖추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서거(逝去)’라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