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의 한 장면. 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전국답사설'이 그대로 나오는 영화다. /CJ ENM

몇 년 전 일입니다. 한 인터넷 동호회 회원이던 저는 춘천역 앞에서 모이기로 한 다른 회원들과 함께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동호회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동창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로 도착했는데 그 사람만 차를 몰고 춘천역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직 오고 있어?”

“응.”

“어디쯤 왔는데?”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따라 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지나치는 좌표가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알려주는 대로 따라만 오면 되는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과 거리만 알려줄 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주기 어렵습니다.

인류는 멋 옛날부터 지도를 그렸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고, 내 주변과 더 먼 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나아가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인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평양 마셜 군도의 원주민들이 야자 잎줄기로 지도를 만든 것부터 시작해 나일강 범람으로 골치를 앓던 고대 이집트에서 측량을 통한 지도 제작이 이뤄졌습니다. 이미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지도를 만들었고, 12세기 동양에서 전래된 나침반으로 항해술이 발달했으며, 1470년대 유럽에선 지도를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험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삶의 공간을 조망할 수 있게 해 주는 길잡이와도 같았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진 1831년의 '새 영국 지도첩'

1596년 네덜란드의 메르카토르는 면적 왜곡을 무릅쓰고 방향과 각도가 정확하게 나타나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고안했습니다. 17세기에 도입된 삼각측량에 힘입어 18세기 프랑스에선 최초의 과학적인 근대 지도인 축척 8만6400분의 1 지도가 만들어졌습니다. 19세기에 도입된 등고선은 땅의 높고 낮은 기복의 표현을 구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제 20세기에는 원격탐사와 위성사진이 응용되는 첨단 제작이 이뤄졌고, 지구상의 땅덩어리가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의문은 거의 해소가 된 듯 보입니다.

그럼 한국은 어땠을까요. 고구려가 당나라에 지도를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는 연도가 서기 628년이니 꽤 역사가 깊습니다. 1861년 나온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전통 지도학의 집대성이었습니다. 산, 하천, 성, 못, 역참, 봉수를 꼼꼼이 기록한 디테일은 지금 봐도 경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김정호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 그러니까 김정호가 전국을 샅샅이 답사하며 지도를 작성했다거나, 백두산에 7~8번 올라갔다는 얘기는 과연 사실일까요?

'대동여지도' 22첩을 펼친 모습. /조선일보 DB

아닙니다. 모두 20세기에 만들어진 전설일 뿐입니다. 그는 당시까지 축적된 지리지(地理誌)의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교한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1884년 조선에 부임한 미국 무관 조지 클레이턴 포크가 지방을 여행할 때 ‘대동여지도’를 들고 다녔을 정도로 대단히 실용적이었습니다.

한국인에 의한 근대 지도의 제작은 생각보다 늦습니다. 1961년 건설부 산하 국립건설연구소가 설립된 뒤에야 지도가 제작됐습니다. 국립건설연구소는 현재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의 전신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최신 전국지도를 들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이것도 역시 대단히 시기가 늦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행정·군사용 전문 지도가 아닌 일반인용 지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작비나 인쇄술도 문제였겠지만, 아마도 안보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사회과부도’ 교과서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일도 많았습니다. 서점에 제대로 된 일반용 지도가 배포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는데,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비로소 ‘레저’라는 개념이 생겼던 것입니다.

10여년 전에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지도 전문 출판사인 Y사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의외였던 것은 생각보다 무척 영세한 규모였고, 두 번째는 출판사답지 않게 직원들이 작업복 점퍼를 입으며 근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건설사나 공장 현장의 분위기마저 났습니다. 언제든지 ‘현장’에 뛰어들어 조사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2009년 11월 지도 제작 작업을 하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Y사의 직원들. /주완중 기자

무척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이 사무실에 즐비했던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개발, 택지개발, 고속도로, 철도, 등산, 관광, 골프장에 관련된 자료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지도에 마땅히 들어가야 하지만 땅 모양만 가지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요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 물론 지도의 기본 바탕은 지형(地形)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항공사진을 근거로 해안선, 강, 등고선을 그리고 도로와 주요 건물을 넣은 ‘국가기본도’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그림을 그릴 때 바탕을 칠한 정도입니다. 이제 이 지도 위에 온갖 정보를 넣어야 합니다. 업체 직원들은 마치 상상 속의 김정호처럼 전국을 다니며 현장을 조사합니다.

“점퍼와 군화 차림으로 지방 곳곳을 다닙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선 간첩인 줄 알고 신고하는 일도 많았어요. 그렇게 구석구석을 조사하고 나서 지도를 만들 때 보면 그새 실제로 바뀐 게 또 많더라고요. 마을 이름, 도로 폭, 방향이 달라져 있기도 하고…”

길은 길이되 길이 아닌 길도 많았다고 합니다.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비밀스런 길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 다음에는, 기존 지도에 버젓이 표시된 길이 실제론 사륜구동차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저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2002년에 경기 안성에 있는 미리내성지를 취재하러 갔었는데, 분명히 진입로처럼 지도에 표시된 미리내성지 북쪽 길이 가파른 언덕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비포장으로 바뀐 길은 언덕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진흙이 많아지는 것 같더니 급기야 차 바퀴가 빠져 버렸습니다. 간신히 차를 돌려 내려오는데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죠. 지금 인터넷상의 지도를 확대해 보니 그 북쪽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를 만들기 위해선 시청, 도청, 지방국토관리청, 한국도로공사, 한국관광공사, 문화재청 같은 관공서를 분주하게 드나든다고 합니다. 개발계획, 도로, 택지, 문화재 관련 새 자료를 얻고 전국 관광지 정보도 수집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대체로 지도를 만들러 왔다고 하면 관공서에서 협조는 잘해 주는 편이라 다행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건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인 문제인데, 문화재청을 출입하는 저는 언젠가 반구대 암각화를 취재하기 위해 다른 기자들과 함께 울산에 갔다가 차량을 타고 암각화 근처 ‘사연댐’으로 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비게이션을 검색해도 그런 지명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문득 이곳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 ‘나오지 않을 테니 근처 다른 곳을 검색하는 게 좋겠다’고 했죠.

그건 바로 이런 얘기였습니다. “군부대나 발전소 같은 주요 국가 시설은 지도에 표시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얼마 전까지는 경찰서도 어디 있는지 싣지 못했으니까요.” 이러다 보니 온갖 웃지못할 일도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양강댐’은 춘천 시내 곳곳에서 이정표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지도에는 어디 있는지 표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청와대’는 나오지 않지만 ‘청와대앞길’이나 ‘청와대사랑채’는 버젓이 나온 게 최근까지의 일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이제 다행히도 지도에 그 이름과 자세한 경내 지도가 실릴 수 있게 됐습니다.

2022년 6월 30일 네이버지도로 찾아본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일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도상에선 이 일대에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표시됐었다. /네이버

지도를 만든다는 게 갈수록 쉬운 일이 아니라는 하소연이 이미 그떄 나왔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면서 순식간에 건물과 도로가 새로 생기고 해안선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업데이트가 조금만 늦어도 살아남기 힘들게 됐어요. 20년 전에는 도로만 표시해도 많이들 샀는데, 지금은 ‘여기 있는 펜션이 왜 지도엔 안 나오느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종이 지도’의 심각한 위기는 당시 이미 가시화되고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지도의 편리성과 빠른 업데이트 앞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여전히 종이 지도가 필요한 것일까요? 이 출판사의 한 간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했습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의 위치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종이 위에 그려진 지도뿐입니다.”

매대 면적이 형편없이 줄긴 했지만, 엊그제 들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여전히 지도책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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