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지붕의 푸른색이 심연(深淵)처럼 가라앉았다. 불빛을 받은 청와대 본관은 황금색 건물인 듯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렸다. 지난 5월 일반인 대상 개방을 시작해 131만명이 다녀간 청와대는, 20일부터는 야간에도 문을 연다. 8월 1일까지 이어지는 ‘청와대 한여름밤의 산책’ 행사로, 행사 하루 전인 19일 언론 등에 먼저 공개됐다.
청와대 정문을 통과한 방문객이 먼저 찾은 곳은 정문 정면의 본관이었다.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외국 정상이나 지도자에겐 한국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 지어진 이 본관은 한옥과 1970년대 콘크리트 양식이 혼합된 곳이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갈 때 앞에 보이는 ‘금강산수도’는 한반도 지도를 그린 그림인데, 아래서 볼 때는 작아 보이지만 계단을 오를수록 규모가 크게 보여 대통령들에게 통치의 어려움을 깨닫는 역할을 해 준다고 한다. 대통령의 집무실을 본 관람객들은 “생각보다 소박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관 오른쪽의 철문을 통과하면 구 본관 터인 ‘수궁터’가 나온다. 여기서 가파르게 올라가는 보행로는 대통령 관저로 가는 오솔길이다. 대통령이 출근하기는 쉬워도 퇴근하기는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낮에는 느낄 수 없는 밤의 숲길 정취가 호젓했다.
관저에 도착한 관람객은 인수문(仁壽門)을 지나 관저 앞마당에 마련된 객석에서 오미자차와 제호차를 마시며 작은 음악회를 감상했다. 첼리스트 김솔다니엘과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의 첼로와 가야금 합주로 선보인 ‘운하’와 ‘한양’이었다. 가야금이 울리면 첼리스트는 첼로를 마치 장구처럼 두드리기도 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청와대 건물에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이번 야간 관람에서 특별하게 공개된 곳은 국내외 귀빈이 방문해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던 상춘재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현대적 양식이 가미된 전통 의자와 백자·공예품들이 한국의 전통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본관에 들어갈 때 마치 성지(聖地)를 순례하기라도 하듯 헝겊 덧신을 신어야 하는 것은 청와대가 여전히 국민에게 어려운 성역임을 드러내는 듯했다. 본관의 세종실·충무실과 관저 내부를 볼 수 없는 것도 아쉬웠다. 상춘재에서 녹지원으로 갈 때는 밤이라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행사 주관 단체인 한국문화재재단의 최영창 이사장은 “사실은 귀로가 좀 심심해서 레이저를 쏴 반딧불이 같은 조명을 연출했고, 정자에서 대금을 연주하는 이벤트도 넣었다”고 했다.
행사는 오후 9시에 끝났다. 서울 관악구에서 온 관람객 박준흥(76)씨는 “낮에 방문해선 맛볼 수 없었던 조명과 어우러진 정취를 접하니 참 좋다”고 말했다. 야간 관람은 이미 신청과 추첨을 통해 92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200명이 저녁 7시 30분과 8시 10분의 2회로 나눠 청와대를 둘러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