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 유적으로 평가받는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경남도기념물)가 최근 김해시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7일 “훼손 범위를 파악하는 발굴 조사를 시행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해시는 8일 해당 유적의 국가사적 신청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정부의 무리한 가야사 복원 드라이브가 불러온 참사’로 보고 있다.
구산동 지석묘 유적의 훼손된 부분은 유적의 일부로서 묘역 표시 역할을 하는 수많은 박석(바닥돌)과 그 아래 청동기 시대 문화층으로, 고인돌 축조 방식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다. 이 지석묘는 상석(덮개돌)의 무게가 350t, 길이 10m, 묘역 넓이는 1615㎡에 달하는 대형 유적으로, 프랑스 카르나크 고인돌(무게 약 40t) 등 해외 유적보다 큰 돌로 만들어졌다.
‘30~4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사건은 지자체가 문화재 보존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저지른 일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 6일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 없이 공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바닥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빼 고압 세척, 표면 강화 처리한 뒤 다시 그 자리에 박아 넣었다”고 했는데, 유적에 묻은 고고학적 자료를 스스로 제거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박윤정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장은 “유적의 땅을 파는 일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매장문화재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 31조 2항은 ‘허가 없이 이미 확인된 매장 문화재 유존지역의 현상을 변경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06년 처음 발굴된 구산동 유적은 ‘규모가 너무 크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흙으로 덮였다. 복원 대신 보존을 택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2017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해 경남·경북·부산·전북 등 가야 관련 지자체들이 향후 10~20년 동안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야사 사업 예산은 3조원에 육박했다. 고대사 전공자인 A교수는 “사업을 추진하는 ‘가야 문화권’의 넓이가 백제나 신라 문화권보다도 크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라고 했다.
기초 자치단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나온 곳은 김해시였다. ‘가야사복원과’라는 부서까지 설치한 김해시는 2018년 “가야사 2단계 사업에 2022년까지 14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금관가야의 근거지는 김해였고, 김수로 설화가 전해지는 구지봉은 바로 구산동에 있다. 기원전 2~1세기에 축조돼 초기 가야의 유적일 가능성이 큰 구산동 지석묘도 다시 복원의 대상이 됐다. 김해시는 2020년부터 이 유적의 사적 지정을 추진하면서 흙을 걷어내고 복원·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훼손을 저지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야사 복원 추진 과정에서 일의 경중(輕重)이 바뀐 탓’이라고 말했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복원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유적은 복원보다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기본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지자체 내 전문성을 지닌 인력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한상(고고학) 대전대 교수는 “학예연구사보다는 토목·건축 관련 인력이 복원 사업의 전면에 배치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는 “가야사 복원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지자체가 예산 확보와 가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