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에 음식은 여섯 종류면 충분, 전은 부치지 않아도 된다. 음식 놓는 위치는 가족이 상의해서 정하면 된다.’
한국 유교를 대표하는 성균관이 차례상 간소화 캠페인에 나섰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위원장 최영갑)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날 시연을 통해 과일(밤, 사과, 배, 감)과 3색 나물, 구이[炙], 물김치, 송편 그리고 술 등 여섯 종류, 아홉 접시만 올린 차례상을 선보였다. 성균관 측은 “차례상의 기본은 이 여섯 가지이며 여기에 육류, 생선, 떡 등을 추가할 수 있다”며 “구이 대신 포(脯)나 전을 올려도 되는데 가족이 합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차례상 표준안엔 전이 오르지 않았다. 성균관 측은 “김장생 선생의 ‘사계전서’에도 ‘밀과와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기록이 있다”며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된 표준안의 핵심은 ‘간소화와 정성 그리고 상식’이었다. 최영갑 위원장은 “유학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악기(樂記)’에도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고 했다”며 “차례의 의미는 조상을 기리며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조상들의 차례상은 상식적이었다고 했다. 바닷가에서는 생선, 내륙에서는 육류를 주로 올렸다.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억지로 준비하는 것도 예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지나친 형식주의도 경계했다. 차례 상차림의 기본으로 여겨졌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는 예법을 다룬 옛 문헌에도 없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차례상의 음식 위치를 놓고도 가족 간에 다툼이 있을 정도로 차례가 형식 위주로 치우쳤다는 것. 퇴계 이황이나 명재 윤증 집안에선 차례상에 간소하게 술, 과일, 포만 올린다고 했다. 차례와 성묘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 과일의 가짓수도 가족이 상의해 정하면 된다고 했다. 이날 자주 나온 표현은 ‘가족 간 합의’였고 ‘~해선 안 된다’보다는 ‘~해도 된다’가 많았다.
이날 회견에선 위원회가 지난 7월 국민 1000명, 유림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조사에서 ‘차례에서 개선할 점’으로 일반 국민과 유림 모두 ‘간소화’(국민 40.7%, 유림 41.8%)를 꼽았다. 음식의 가짓수는 일반 국민은 ‘5~10가지’(49.8%), 유림은 ‘11~15가지’(35%)라고 대답했다. 차례 비용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은 ‘10만원대’(37.1%), 유림은 ‘20만원대’(41%)가 적절하다고 답했다.
성균관이 작년 2월 의례정립위원회를 구성해 9차례 회의를 열고 여론조사를 벌인 끝에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은 것은 ‘반성’의 표시다. 최 위원장은 이날 “명절만 되면 ‘명절 증후군’ ‘남녀 차별’이란 용어가 나오고 명절 후 ‘이혼율 증가’ 현상까지 유교 때문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며 “늦었지만 이번 표준안을 통해 국민들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경제적 부담과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개인적으로는 차례와 제사상에 피자나 치킨을 올리는 것도 찬성한다”며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보다는 간소화해서라도 제사를 모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