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이나 자유민주주의 같은 용어가 사라진 것도 문제지만, 역사 교과서 집필 교수들이 철 지난 좌파 수정주의(revisionism)를 고집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
역사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해 온 허동현(62)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한국근현대사 전공)는 최근 불거진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새로 출간한 연구서 ‘역사관과 역사학자’(북코리아)에서 동학농민봉기, 대한제국 등 한국사의 첨예한 논쟁을 분석하며 교과서 문제도 비중 있게 언급했다. “현 역사 교과서 서술의 큰 틀이 철 지난 수정주의 사관에 입각했다”는 것이다.
―수정주의 사관이 왜 문제인가?
“종래 미국의 정통 사관은 베트남전 등의 미국 참전 이유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봤지만, 위스콘신대의 좌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수정주의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다르게 해석했다. 이들은 6·25를 베트남전의 원형으로 삼았고, 미국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한반도에선 계급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6·25전쟁에서 정당한 쪽은 북한이 되지 않나?
“그렇다. 북한의 ‘정당한 민족 해방 전쟁’이 되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 등 수정주의 학자의 영향을 받은 한국 학자들이 교과서의 서술 구조를 바꿔버렸다. 문제는 1990년대 구소련 비밀 문서들이 공개된 이후 6·25가 소련 스탈린의 지령에 의한 침략전이란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고 수정주의가 빛을 잃었는데도, 교과서 집필자들은 여전히 수정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교과서의 대표 필자인 50~60대 학자들은 1980년대에 이 같은 수정주의 사관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전 교과서를 쓰던 민족주의 성향 학자들과는 선을 긋는 ‘민족·민중주의’ 성향을 지니게 됐고, 현재 30~40대 학자들도 여전히 그 영향하에 있다고 허 교수는 설명했다.
―그런 기조가 실제로 교과서엔 어떻게 나타났나?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서술부터 문제다. 미국을 제국주의 열강의 일원으로 봐 침략성을 부각하고 민족자결주의를 깎아내린 반면, 공산 혁명으로 새로 들어선 소련은 약소 민족의 해방을 지원하는 나라인 것처럼 서술했다.”
―소련을 우호적으로 서술했다는 건가?
“당시 소련의 의도가 약소 민족의 해방이 아니라 계급혁명에 있었다는 것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독일·일본 같은 ‘백색 전체주의’만 비판할 뿐 소련의 ‘적색 전체주의’에는 눈을 감고 있다. 1940년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여 명을 사살한 사건이 스탈린의 지시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듯 소련 전체주의의 악행은 엄청난 것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의 서술은?
“소련의 공세적 팽창 정책이 냉전의 핵심적 요인이었다는 최근 학계의 통설과는 달리 냉전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소련은 1945년 9월 런던 외무장관 회의에서 일본과 지중해 진출이 좌절되자 북한에 정권 수립 지시를 내려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된 것이지만 교과서는 이를 외면했다.”
―교과서는 당시 국면에서 ‘통일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좋은 말 같지만, 바꿔 말해 38선 이남에서 세워진 대한민국은 ‘생겨서는 안 될 나라’라는 의미다.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이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소련의 정치 공작이었다는 사실을 서술하지 않아 대한민국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런 큰 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나 ‘남침’은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과서 집필자들의 역사관이 문제인 것인가?
“세계가 바뀌었는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오래전에 서재에 꽂은 책 속의 내용을 여전히 진리로 믿는 19세기 말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역사란 미래 세대에게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살고 죽을 것이냐를 가르치는 과목인데, 정작 제시된 것은 좌파 수정주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