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항상 뵐 때마다, 아무리 본인이 힘드셔도 유머와 따뜻함으로 맞아주셨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대학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하던 분인데…. 돌아가셨다니 정말 슬플 뿐입니다.”(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김옥길기념관.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잇달아 건물 1층으로 들어섰다. 전날 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한 김동길(94) 연세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이곳에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평생 직언(直言)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깊이 설파했던 김 교수의 영정 앞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넋을 위로했다.
김옥길기념관은 김동길 교수의 누나이자 이화여대 총장, 문교부 장관을 지낸 김옥길(1921~1990) 여사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로, 1999년 김 교수의 집 마당 자리에 건립됐다. 자택 앞에 빈소를 마련한 이유는 ‘나를 위한 장례식을 병원에서 치르지 말라’고 밝힌 김 교수의 유지 때문이다. 장소가 협소해 근조 화환은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것 말고는 모두 돌려보내야 했다.
김 교수가 2011년 원고지에 직접 써서 이철 세브란스의료원장에게 보낸 서신은 이날 공개됐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추모식을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곧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하여 의과대학생들의 교육에 쓰여지기를 바라며, 누가 뭐래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은 연세대에 기증됐고, 김옥길기념관을 포함한 자택은 2020년 이화여대에 기증됐다. 한 지인은 “집을 제외하고 남은 재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권성동·김석기·안철수·윤상현 의원,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유종호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간부 일동 등이 빈소를 찾았다. 일반인을 포함해 약 600명이 조문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단일화 국면에서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계속 기억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것이 제게 힘이 됐다”며 “최근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드렸더니 ‘금방 퇴원할 테니 집에서 보자’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김동길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통령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었다.
유종호 회장은 “정말 재능과 기억력이 뛰어나고 사회적인 기여도 많이 하신 분인데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고 안타깝다”며 “노년이라고 하는 것이 내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의 제자로 임종을 지켜본 김동건 전 KBS 아나운서는 “지난 2월 코로나19에 걸렸다 회복하셨지만, 3월에 입원하신 뒤 최근 평소와는 아주 다르게 쇠약해진 모습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고인에 대해서는 “평생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오시며 귀감이 되셨고, 언제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다는 사랑과 진심, 의협심과 정의감을 보여 주신 분”이라며 “사람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해지기 마련인데, 박사님은 약자에게 다정했으며 강자의 잘못 앞에서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발인을 대신한 가족 단위의 예배를 7일 오전 11시 김옥길기념관에서 거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