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9월 4일 오후 충남 서천군 마량진에 영국 군함 두 척이 나타났다. 맥스웰 함장의 알 세스트호와 바실 홀 선장의 리라호였다. 이들은 중국 천진에 암허스트 경(卿)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하선시키고 해도(海圖) 작성을 위해 조선과 류큐(오키나와)의 해안선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마량진 갈곶에 알 세스트 호를 정박시킨 맥스웰 함장은 작은 보트를 타고 해안으로 이동하던 중 조선 관리를 만나게 된다.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었다. 조 첨사는 낯선 배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군졸들을 거느리고 찾아온 것.
조 첨사 일행이 배에 올랐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궁금한 것은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 마량진으로 돌아온 조 첨사는 충청 수사 등 상부에 외국 선박의 출현을 보고했다. 이튿날인 9월 5일 다시 영국 군함을 찾은 조 첨사는 배를 실측하고 승무원 숫자를 조사하는 등 시간을 끌며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으나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윽고 영국 배는 떠나려했고, 조 첨사는 배에 실린 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영국군은 책을 선물로 주고 떠나갔다.
조선 관리와 영국 군함의 만남은 이렇듯 1박 2일의 짧고, 어찌보면 싱거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양측은 각각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당시 조 첨사가 받은 것이 영어 성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실 홀 선장은 여행을 마친 후 ‘조선 서해안과 유구 항해기’란 책을 썼다. 책에서 홀 선장은 조 첨사의 태도가 ‘우아하고 자연스러웠다’ ‘문화 정도가 높다’고 평가하고 조 첨사가 “성경에 상당한 마음이 끌렸”으며 “배가 막 떠나려 할 때 건네주자 아주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성경을 받고 상당히 기분 좋게 돌아갔다”고 적었다. 우리측 실록 등 기록에도 당시 영국측으로부터 책 3권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 기록엔 펼쳐보아도 언문(한글)도 아니고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누군가 글자를 알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받았다고 한다.
개신교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성경 전래 과정에 대한 연구를 확산하고 영국 군함이 도착한 지 200년이 되는 지난 2016년 마량진 성경 전래지기념관을 개관했다. 연면적 415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 기념관은 지중해 휴양시설처럼 흰벽과 갈색 지붕으로 지어졌다. 1~2층은 전시관, 3층은 전망 카페, 4층은 예배방으로 꾸며졌다. 전시관에는 맥스웰 함장과 조대복이 만나는 장면을 등신대 인형으로 재현하는 등 다양한 시청각 기법을 활용해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또 당시 영국 함대가 조대복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진 ‘킹 제임스 성경’의 초판본을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고 한다. 4층 예배당에는 서쪽 벽면에 십자가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석양이 질 때면 ‘빛의 십자가’가 연출됐다.
2016년 개관 후 개신교인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한교총 순례단 일행을 안내한 기념관 이사장 정진모 목사는 “개관 후 5만 5000명이 방문했다”며 “최근에도 서울 영락교회, 충현교회 등에서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관 인근 바닷가에는 당시 영국 함선과 조선의 판옥선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성경전래기념관 인근에선 아펜젤러 선교사의 마지막 발자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 선교사는 1902년 목포로 가던 중 이곳 마량진 서쪽 바다에서 선박 충돌 사고로 숨졌다. 현재 이곳엔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이 2012년에 준공됐다.
순례단과 동행한 허은철 총신대 교수는 “마량진 일대는 조선시대에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걷은 곡식을 한양으로 운송하던 주요 항로였기 때문에 높은 관직인 종3품 첨사가 근무했던 것”이라며 “또한 해난 사고가 잦은 곳이기도 했는데 아펜젤러 선교사가 안타깝게 이곳에서 순직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