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1598년 11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앞두고, ‘선봉에서 싸우면 위험하다’는 부장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출전했다는 기록이 담긴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전사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이하 ‘대통력’)를 최근 일본에서 국내로 들여와 24일 공개했다.
1600년(경자년)의 책력인 이 자료는 유성룡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날씨, 일정, 약속, 사건, 병세와 처방 등의 글씨가 쓰여 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종이를 덧대 만든 표지 위에 적힌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이다. “전투(노량해전)하는 날에 직접 시석(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으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아아!(戰日, 親當矢石, 褊裨陣止曰, 大將不宜自輕 …(不)聽, 親出督戰, 旣而爲飛丸所中而死, 嗚呼)”라고 기록됐다.
이것은 ‘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적군과 근접전을 벌여 총탄을 맞았을까’라는 기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기록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의뢰를 받아 초서로 쓰인 문서 내용을 해독한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이순신 장군이 부장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선봉에 나섰다는 것은 처음 밝혀진 것”이라며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안위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채 일부러 맨 앞에서 전투를 지휘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서는 이 밖에도 ▲노량해전 직전 유성룡이 영의정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들은 이순신이 배 안에 있을 때마다 맑은 물을 떠 놓고 스스로를 경계했고 ▲철군을 결정한 왜군이 물러날 때 항상 머리를 조아려서 유성룡이 한바탕 웃었다는 등 임진왜란 관련 새로운 내용을 기록했다. 노 소장은 “정유년의 비망 기록과 이순신 장군을 위한 애도시 등 현재 남아있는 유성룡의 친필과 ‘대통력’을 비교해 보니 필체가 같았다”고 말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경자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유성룡 종가 문적’에도 빠져 있는 기록인 ‘대통력’은 203일의 기록 속에 190여 명의 인물을 언급하고 있으며, 7~8종의 술 제조법과 여러 약 처방을 담고 있다. 또한 “허준이 약을 소개해 줬다”는 기록이 있어 유성룡이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으로부터 의학적 도움을 받은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