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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2일 ‘농촌에서 살아보기’ 우수사례 발표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인들이 농촌에서 최장 6개월간 거주하며 생활 여건을 미리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귀농(歸農)이나 귀촌(歸村)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농촌 출신이 아닌 도시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언어 파괴가 말도 못할 지경인 요즘에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요. 종부세가 천장을 부수고 폭등하는 시대, 비싸고 복잡하고 팍팍한 곳을 떠나 ‘흙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것으로 많이 해석하지만,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대리만족 삼아 비록 남루한 모습일지언정 ‘자연인’을 TV에서 보고 또 보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만약 이제 도시를 떠나겠다고 결심했다고 해도, 지극히 실존적인 문제와 마주쳐야 합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고전(古典)이 하나 있습니다. 270년 전에 나온 책이라고 해서 그저 옛날 얘기로만 여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신문사 여행 담당 기자가 이 책의 문고판을 뒷주머니에 꽂고 취재를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 책은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1751년에 쓴 ‘택리지(擇里志)’입니다. 책 제목부터가 ‘어느 마을에 살지 선택하도록 돕는 기록’이란 뜻입니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 '택리지'. 정말 저렇게 고서 표지에다 스티커를 붙여놨단 말인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그거 풍수지리서 아니냐?”는 것이죠. 아닙니다. 풍수지리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풍수지리에 따라 살 만한 곳을 고르는 작업으로 이뤄진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국토를 지형, 기후, 물자, 교통, 인심(人心), 산수 같은 여러 시각으로 분석하고 ‘살 만하다’ ‘살 만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유교적 인문지리서’라 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판본 자체가 이본(異本)이 워낙 많았던 책인데다 시중에 ‘택리지’란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 다양해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 정본(定本)이라 할 수 있는 완역본이 출간됐습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팀이 낸 ‘완역 정본 택리지’(휴머니스트)입니다. 200종의 이본 중에서 신뢰성 높은 23종을 골라 분석하고 교감(校勘·같은 종류의 여러 책을 비교해 차이 나는 것들을 바로잡음)하는 데 6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택리지'를 번역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그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는 실존적 문제를 담고 있는 ‘택리지’는 당파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희구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저자 이중환은 남인 계열의 명문가 출신 선비로서 23세에 과거에 급제해 서른 살 안팎에 촉망 받는 관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당쟁에 휘말려 고생하기 시작했습니다. 38세 되던 해인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에 휘말려 삭탈관직당하고 조정에서 쫓겨났습니다.

선비가 벼슬을 잃는다는 것은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는 수준보다 더 큰 문제를 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그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은 물론 서울에서 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굶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전국을 떠돌며 각 고장마다 ‘살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제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 바로 ‘택리지’였습니다.

안대회 교수가 말했습니다. “이본이 무척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필사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의미입니다. 국토지리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준 실용서였기 때문이죠.” ‘택리지’는 어디 사는 게 좋을지 제시해 주는 부동산 서적이었고, 산수가 빼어난 곳을 안내하는 여행서였으며, 각 지역의 물산, 교통, 물류를 소개한 경제서였다는 것입니다. 지역 전설 40여 가지를 채록한 구비문학의 보물창고기도 했습니다.

자, 그런데.

‘택리지’는 과연 어디에 가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제는 ‘풍수’가 아니었습니다(이렇게 말한 뒤 ‘바보야’를 붙이는 문장은 이제 진부하고 바보같으니 후배 기자들은 그만 좀 썼으면 좋겠습니다).

“수확량이 많고 토지가 비옥해 경제가 활성화된 곳, 인심이 좋은 곳, 그러면서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살 만한 곳으로 꼽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안 교수는 “조선 정부의 지역 차별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던 ‘택리지’는 이중환 스스로 전라도보다 경상도를, 함경도보다 평안도를 우호적으로 서술하는 등,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어디냐고요.

“경남 합천, 전남 구례, 전북 전주, 대전 유성, 경북 하회, 평양 주변, 재령평야가 대표적인 ‘가거처’로 등장합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한번 이 지역들 중 현재 휴전선 이남에 있는 다섯 지역을 ‘택리지’에서 어떻게 소개했는지 그 일부를 들여다보죠.

지난 3일 경남 합천군 가야산국립공원 입구에 가을 단풍이 물들고 있다. /뉴시스

<합천> 감천 남쪽에는 선석산이 있고, 선석산 남쪽에는 성주와 고령이 있는데, 고령은 옛 가야국 지역이다. 또 고령 남쪽에는 합천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가야산 동쪽에 있다. 세 고을의 논은 영남에서 가장 비옥해서 파종을 적게 해도 곡식을 많이 수확한다. 그러므로 대대로 이 땅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살림이 넉넉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가 없다.

<구례> 남원 동남쪽에 있는 마을은 성원(현 구례군 산동면 일대)으로 최씨들이 대대로 사는 곳이고, 산수의 경치가 상당히 아름답다. 남쪽에는 구례현이 있다. 성원에서 구례까지 하나의 들판이 펼쳐져 있고, 1묘에 1종을 수확하는 비옥한 논이 많다. 구례 서쪽에는 산수가 기이한 봉동이 있고, 동쪽에는 화엄사와 연곡사 등의 명승지가 있으며, 남쪽에는 구만촌(구례군 광의면 구만리 일대)이 있다. 임실에서 구례까지 강가를 따라 이름난 마을, 경치가 뛰어난 곳, 큰 촌락이 많다. 하지만 오로지 구만촌만이 강가에 바짝 접하여 뛰어난 경치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뱃길과 생선, 소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 가장 살 만한 곳이다.

연간 11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 풍경.

<전주> 주줄산(현 운장산) 서쪽에 있는 여러 골짜기의 물은 고산현을 거쳐 전주 경내로 흘러서 율담, 양전포, 오백주가 된다. 큰 시냇물로 물을 대니 토지가 매우 비옥하고, 벼·물고기·생강·토란·대나무·감 등을 기르고 팔아 이익을 얻으므로 마을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를 다 갖추고 있다.

<유성> 지역 사람들이 “첫째는 유성이요, 둘째는 경천, 셋째는 이인, 넷째는 유구이다”라고 말하거니와 살기에 좋은 땅이라는 말이다. (…) 고개에서 벗어나 들판에 내려앉은 시냇가 마을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공주의 갑천, 대전의 유성을 첫째로 꼽아야 한다.

<하회> 무릇 시냇가의 주거지는 반드시 고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야만 평화로운 시대든 난세든 오랫동안 살기에 좋다. 그러므로 시냇가의 주거지는 영남 예안의 도산과 안동의 하회를 첫째로 꼽는다. (…) 하회는 평탄한 언덕에 자리잡았으며 황수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는 곳에 서애 유성룡의 고택이 있다. 황수는 주위를 휘감아 돌다가 마을 앞으로 넘실넘실 흘러와 깊게 고인다. 황수 북쪽의 산은 학가산에서 갈라져 와서 강가를 두르고 있는데 모두 석벽이다. 돌의 빛깔도 차분하고 수려하여 험악하고 거친 모양이 전혀 없다. 석벽 위에는 옥연정과 작은 암자가 바위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았고 소나무와 향나무가 집들을 가리고 있으니 참으로 절경이다.

“이들 지역 말고도 ‘택리지’가 우리나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라고 극찬한 곳이 있습니다.”

이건 그다지 놀라울 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강원도 동해안이었습니다. 이중환이 묘사한 이 지역의 정경은 대단히 감각적이어서, 좀 길지만 옮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원 강릉의 낮 최고기온이 20도를 넘는 기온을 기록한 지난 20일 강릉 안목해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세기의 독자가 ‘택리지’를 읽고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안대회 교수는 “산과 물이 자연적 도로망을 만들었던 우리 국토 원형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택리지’는 조선 후기에 널리 읽힌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책 속의 서술은 실제로 당대 사람들이 이주하고 여행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쳐, 19세기의 이규경이 너도나도 ‘택리지’를 보고 거처를 옮기는 폐단을 지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택리지’가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됐다는 의미죠.

그러나 ‘택리지’의 결론은 무척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인구가 점차 늘어나 그만큼 자연이 조금씩 피해를 입는 정황이 보인다.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흙이 한강으로 유입돼 수위가 얕아지고 있다”는 서술은 환경 문제를 일찌감치 내다본 문장처럼 보입니다.

서울시의 첫 생태경관보전지역인 한강 밤섬. 우거진 풀숲 뒤편으로 63빌딩 등 여의도 시가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자신이 쓴 책 자체를 무위(無爲)로 여기는 듯한 문장도 보입니다. “나라가 쇠퇴하자 시비(是非) 다툼이 커졌고, 다툼이 커지자 복수심도 깊어졌으며, 복수심이 깊어지자 서로 원수를 죽이는 함정을 파서 몰아넣었다. 아! 사대부가 조정에서 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산림(山林)에서 살면 된다. 이것이 고금(古今)에 통하는 처신이건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택리지’의 마지막에서 이중환은 ‘이젠 조선 팔도 전체가 각박해져 살 수 없는 땅이 돼 가고 있다’는 자괴감을 드러냅니다. 무려 18세기 중반에 말입니다. 그건 사실 어디 가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이 땅의 처절한 현실에 대한 한탄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마을이든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인심은 황폐화됐으며, 자연과 산수가 옛 모습을 잃어가는 현상 말이죠. 하물며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어떨까요. 이제는 정말 주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연인’이 돼 산과 나무를 벗삼아 홀로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요?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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