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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사모님, 장로님, 집사님, 신부님. 빨리 빨리~”
지난 1일 이스라엘 여리고의 시험산(Mount of Temptation) 앞 선물가게. 한 상인은 한국 순례단을 보자 거의 자동(?)적으로 속사포처럼 한국어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곳은 예수가 인근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것으로 알려진 시험산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가 유혹을 물리친 자리에서 상인들은 순례객을 기념품으로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언어는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정확히 고객을 겨냥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 순례객(상인 입장에선 고객)은 교회와 성당,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들이지요. 그러니 호객꾼은 목사님과 신부님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이겠지요. “빨리 빨리~”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르쳐준 말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상인들은 무슬림이었습니다. 여리고는 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랍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 나라의 이슬람 지역에서 무슬림들이 기독교 성지 순례객들에게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죠. 묘한 공존이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지난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순례가 처음이었습니다. 책이나 유튜브로 많이 봐서인지 처음이 아닌 것처럼 생각됐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니 느낌은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정치·사회적 현실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2000년 동안 나라가 없던 유대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그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살 곳을 잃었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오랜 전쟁과 항쟁 그리고 협상 끝에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계를 그어놓고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성지는 팔레스타인 혹은 이슬람 지역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바로 남쪽 높다란 장벽으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었습니다. 양측을 가르는 검문소에는 무장병력이 보초를 서고 있었지요. 팔레스타인 차량은 흰색 번호판, 이스라엘 차량은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흰색 번호판 차량이 이스라엘 구역으로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벽 안에 고립된 것이지요. 반대로 노란색 번호판을 단 이스라엘 지역 아랍인들의 차량은 검문만 통과하면 양쪽을 사실상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고요, 장벽으로 가로막지 않은 지역에서도 무슬림 지역과 유대인 지역은 존재한다고 합니다. 암묵적으로 서로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나사렛 시내를 걷다가 꽤 큰 규모의 무슬림 묘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나사렛 거리에도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돼 있었지만 이 지역에 무슬림이 많이 거주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주변은 시장 거리였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를 위한 기념품점이 즐비했습니다. 그런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 역시 대부분 무슬림이었습니다. 곳곳엔 이슬람 사원이 있었고 하루 다섯번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로 울리는 가운데 전세계에서 온 기독교 순례객들은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를 순례하면서 무슬림 상인이 판매하는 기념품을 구입하는 풍경이 처음에 낯설었습니다.
예루살렘 시가지 동쪽엔 한국 개신교인들에겐 ‘감람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습니다. 이곳엔 부활한 예수가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에 ‘예수승천교회’가 있었습니다. 원형 교회 내부 바닥엔 가운데가 움푹 패인 돌이 놓여있었는데 예수의 발자국이라 했습니다. 이 바위를 딛고 승천해 예수의 족적이 찍혔다고 하지요. 원래는 승천을 기념해 천정이 뚫려 있었는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천정을 둥그런 돔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이 교회 앞에서도 “파노라마 사진, 2달러”를 외치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순례단을 현지에서 안내한 이강근 유대학연구소장은 “파노라마 사진 값이 30년 동안 1달러였는데 코로나 이후로 2달러로 올랐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순례를 온 무슬림도 만났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무슬림은 ‘알기 위해서(To Know)’라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진 가격이 2배로 오른 것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엔 연간 210만명 정도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왔다고 합니다. 코로나 기간 중에는 뚝 끊겼던 순례객이 올해부터는 다시 회복되는 추세랍니다. 이스라엘 정부도 관광객과 순례객 유치에 적극적입니다. 유대인 정부는 기독교 순례객을 유치하고, 무슬림 상인들이 기독교 순례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묘한 공존이지요.
그 묘한 공존의 한 장면을 지난 2일 금요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부터 성전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걸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의 안식일인 금요일 낮 예배 시간에 맞춰 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강근 소장은 “금요일이면 예루살렘 전역의 무슬림들이 성전산 사원으로 모인다”며 “일종의 세(勢) 과시인 셈”이라고 했습니다. 인도(人道)에는 무슬림, 차도(車道)에는 기독교 순례객을 태운 버스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전날 저녁 찾은 예루살렘 성벽 중 서쪽인 ‘통곡의 벽’엔 기도하는 유대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라는 말은 현지에서 거리 풍경만 봐도 이렇게 실감이 났습니다. 또한 ‘중동의 화약고’란 말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각기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면서 각자 필요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슬아슬한 균형이겠지요.
이스라엘 성지 순례 이야기는 지면 기사를 통해 곧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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