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우 종교교회 원로목사. 그는 사무실에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겨 주는 작은 조각상을 두고 있다. "교만해질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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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주님 은혜입니다.”

지난주 만난 최이우(70) 서울 종교교회 원로목사의 표정은 편안했습니다. 최 목사는 2003년부터 맡아온 종교교회 담임목사를 마치고 지난 11월 원로목사로 은퇴했습니다. 원래 은퇴는 2023년 4월이지만 미리 후임 목사를 청빙하고 은퇴한 것이지요. 담임목사실과 사택도 후임 목사에게 인계하고 교인이 구해준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은퇴 후 계획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서울 세종대로 정부종합청사 옆 종교교회는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심 속의 시골교회’입니다. 교인들이 ‘시골교회’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순박한 신앙의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 목사의 은퇴와 후임 목사 청빙과정도 ‘순탄’했다고 합니다.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리더십 교체기에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퇴임하는 원로 목사에 대한 퇴직금, 생활비 지원 등의 문제로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종교교회는 그런 잡음이 새어나오지 않았습니다. 최 목사의 새 사무실에 놓인 액자 하나가 순탄했던 리더십 이행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원로장로들과 찬양대 대원들이 손글씨로 쓴 최 목사님에 대한 감사 편지를 액자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은퇴한 최 목사님을 만난 후 지난 4월 그가 펴낸 회고록 ‘흔적’(신앙과지성사)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최 목사가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책은 ‘과연 최 목사님 답다’는 인상입니다. 뜨겁기 보다는 차분하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뚝심이 느껴집니다. 서문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세 가지입니다. ‘미안’ ‘감사’ ‘은혜’입니다. 목회 인생 45년을 정리하는 단어처럼 느껴졌습니다.

최이우 목사의 은퇴를 기념해 종교교회 웨슬리 찬양대가 최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을 선물했다. /김한수 기자

◇'백골’ 출신 목사의 45년 목회 회고

최 목사님은 책에서 자신을 목회자 가운데 ‘백골’(?)이라고 불렀습니다. 신학생 사이에서 우스개로 목회자 아들은 ‘성골’, 장로 아들은 ‘진골’로 부른답니다. 최 목사님은 집안에서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이어서 ‘백골’이라는 거지요. 경북 경주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생 때 친구 따라 처음 교회에 가보았답니다. 1968년 6월 19일, 첫 예배에서 강렬한 경험을 했답니다. 날짜도 잊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가난했답니다. 고교 졸업 후 취직했던 그가 신학교 진학을 결심하자 고향의 경주감리교회에서 장학금을 대주었답니다. 이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해 목회자를 키운 것은 전무후무하게 최 목사 혼자랍니다.

◇교회 장학금으로 신학 공부

책은 가난한 고학생이 목회자로 성장해 시골 개척교회, 군목(軍牧), 대형교회 부목사, 신도시 교회 개척을 거쳐 서울 도심의 100년 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는 40여년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당시만 해도 ‘목사는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신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쌀·음악·도덕’ 등 경상도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발음을 반복해 소리내 연습했다는 대목에선 슬며시 웃음도 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쌀’은 ‘살’, ‘음악’은 ‘엄악’, ‘도덕’은 ‘도득’으로 발음하곤 하거든요.

최이우 목사의 은퇴를 기념해 종교교회 원로장로와 찬양대원 등이 손글씨로 쓴 편지를 모아 액자를 선물했다. /김한수 기자

◇가난한 교인이 건낸 전재산 2000원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를 마친 후 첫 목회지는 경기 남양주 수동면의 성산교회였습니다. 1977년 4월 3일 첫 주일예배 참석인원은 어린이 포함해 15명, 그 전 해의 헌금 총액은 40만 3000원이었답니다. 이 교회에서 ‘종지기’와 목사를 ‘겸업’하던 그는 결혼반지를 팔아 당시 유행하던 ‘차임벨’을 구입하고, 페인트를 사서 직접 슬레이트 지붕을 칠하기도 했답니다. 김장 때가 돼도 비용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배추,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을 가져다주어 김장을 담갔고, 주민들 생일에 초대받을 땐 양말과 손수건을 정성껏 포장해서 선물했답니다. 독사에게 물린 여성 교인의 발에 입을 대고 독을 빨아내서 살리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최 목사가 군목으로 부임하기 위해 떠날 때 그 교인은 이삿짐 트럭 차창 안으로 뭔가를 던졌답니다. 펴보니 꼬깃꼬깃한 1000원 지폐 두 장이었다네요. 최 목사는 책에서 “그분의 생활로 봤을 때 그 2000원은 200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큰돈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이 군목! 중얼중얼하고 밥 먹자”

강원도 양구 전방부대에서 군목 생활을 할 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에 일곱 번씩 주일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답니다. 군인교회들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거든요. 최 목사는 그 덕분에 주일예배 설교 다섯번 정도는 거뜬히 하게 됐답니다. 처음 군목으로 부임하자 고참 장교는 식사 때면 “어이 군목! 중얼중얼하고 밥 먹자”라고 했다네요. 식사 기도를 ‘중얼중얼’이라 표현한 것이지요. 체육대회 등엔 고사(告祀)도 많았다지요. 최 목사는 사단장이 주는 술잔을 사양하는 바람에 노여움을 살뻔 했지만 오히려 그 일이 전화위복이 돼 ‘진짜 목사’로 인정받고 월요일 참모회의도 기도로 시작하고, 고사도 기도로 바꿨다네요.

군목을 제대할 즈음 운명적으로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님을 만났답니다. 김 목사님은 감리교신학대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난 적은 있지만 개인적 인연은 없었답니다. 당시 최 목사는 교회가 없는 대대(大隊)에 교회 건축을 하던 중 강대상과 의자 비용을 부탁드리러 광림교회를 무작정 찾았다네요. 김 목사님은 그자리에서 광림교회 부목사직을 제안하셨다고 합니다. 제대 후 광림교회 부목사를 거쳐 안산 광림교회를 개척해 중형교회로 성장시킨 그는 왕십리교회(현 꽃재교회)를 거쳐 2003년 종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지요.

최이우 종교교회 원로목사가 펴낸 회고록 '흔적'의 표지. 45년 목회인생을 담담하게 정리했다.

◇'기다림의 리더십’

책에서는 ‘기다리는 리더십’을 읽을 수 있습니다. 최 목사는 “목회자에게 가장 큰 유혹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여 목회 성과를 달성해보려는 인간적인 욕심도 그 목적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성과’는 일반인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스트레스인 것이지요.

최 목사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답니다. 종교교회는 1900년에 세워진 감리교의 대표적 교회 중 하나입니다. 역사와 전통,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한편으로는 보수적이고요. 예배순서도 다른 교회와 달리 종교교회만의 전통이 있었다네요. 최 목사는 그것이 불편했고요. 예배순서를 바꾸려던 그는 기도 끝에 “하나님 안 바꾸겠습니다”라고 결심했답니다. “예배순서를 안 바꾸면 교인들은 다 편하고 나만 불편하다. 나 한 사람이 바뀌는 게 쉬울지, 수백 명을 바꾸는 게 쉬울지 답은 뻔했다”는 것이지요. 담임목사실 가구배치도 딱 한 가지, 직사각형 테이블을 원형 탁자로 바꿨답니다. 그럼에도 몇 개월 후 한 장로님은 “목사님, 교회가 다 바뀌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만큼 교회 구성원들은 담임 목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지요.

◇”예배시간 조정? 하나님이 헷갈리십니다”

주일 예배 시간 조정도 1년을 기다렸답니다. 부임 후 5년이 지난 2008년 최 목사는 원래 11시 예배를 10시와 12시로 나누려 했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반대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헷갈리실 겁니다. 100년 동안 11시 예배에 오셨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10시, 12시라니요.” 이때도 최 목사는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답니다. 1년 후 다시 안건을 올리자 그때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고, 예배시간을 조정한 후엔 예배 인원이 200명 정도 늘었답니다. 이때도 최 목사는 ‘장로님과 찬양대원들이 다 동의해준 덕분’이라며 그분들께 공을 돌렸답니다.

승합차와 버스를 교체하는 문제의 해결책도 기다림이었습니다. 노후한 차량 두 대를 한꺼번에 교체하려니 비용이 부족했고, 회의에서는 의견이 엇갈렸지요. 최 목사는 “자동차 한 달 늦게 사도 아무 문제 없다. 기도하자”고 했답니다. 그 한 달 사이에 교인 중 한 분이 차량을 봉헌했다네요. 최 목사가 표결 대신 “기도하자”고 한 것은 갈등 우려 때문이었답니다. 표결은 찬반을 부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별일 아닌 일이 큰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지요. 다수결이 만능은 아닙니다. 최 목사는 책에서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이 충분한 이견의 조율을 통해서 성령의 평안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성과’로 평가받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회 일생을 과장 없이 솔직히 토로한 최 목사님의 ‘흔적’은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최 목사님의 은퇴 후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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