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조선 왕실의 은(銀) 공예품으로 알려졌던 은병이 일본 시계점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14년 만에 문화재 등록이 말소됐다. 문화재 등록 당시 이 은병의 바닥에 찍힌 ‘小林(고바야시)’라는 상표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관보를 통해 국가등록문화재인 ‘은제이화문화병(銀製梨花文花甁)’의 문화재 등록을 말소한다고 고시했다. “바닥면의 고바야시 압인(押印)으로 일본 도쿄 고바야시토케이텐(小林時計店) 제품임이 확인돼 등록을 말소한다”고 밝혔다.
고바야시토케이텐은 과거 일본의 유명 시계점으로, 19세기 중반부터 1943년까지 영업하며 은제품과 장신구 등을 제작해 궁내성 등 관청에 물건을 납품했다.
고바야시토케이텐이 제작한 것으로 밝혀진 은제이화문병은 가로 164㎜, 세로 302㎜ 크기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인 이화 문양이 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이 은병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면서 “주석의 합금률이 높아 표면 광택이 밝고 기계로 생산한 제작방식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이화)을 두툼하게 붙여 넣은 점에서 근대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며 “대한제국의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191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당시 공예품 제작의 실상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닥에 새겨진 고바야시 도장을 볼 때 일본 고바야시토케이덴이 만든 제품이 분명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최근 재조사 끝에 “조선 공예의 맥을 잇거나 왕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등록 당시 문화재위원들이 겉에 드러난 이화 문양에만 집중하고 미처 유물 바닥을 보지 못한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1년 도입된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호되는 국보·보물·사적 등의 지정문화재와는 달리 소유자의 자발적인 보호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주로 근현대 유물을 대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