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넉 달 뒤인 1896년 2월 11일, 고종 임금은 일본군이 점령한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관파천이었다. 고종은 다시 석 달 뒤인 5월 26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맞아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했다. 이제 러시아를 믿고 의지해야 할 중대한 상황에서 민영환을 통해 귀중한 ‘선물’을 황제에게 전달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선물 목록의 일부는 민영환을 수행한 윤치호의 일기에서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실물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 ‘선물’ 중 5점이 127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9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의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특별전(2.10~4.19) 개막식에서다. ‘무기고’란 크렘린박물관 중 과거 러시아 황실 무기고였던 건물을 말한다.
고종이 보낸 선물 17점 중에서 조선 나전 작품의 정수(精髓)라 할 만한 ‘흑칠나전이층농(黑漆螺鈿二層籠)’과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숨겨진 걸작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역사 인물의 일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 2점, 화려하고 정교한 ‘백동향로(白銅香爐) 2점이다. 모두 그 동안 크렘린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작품들이다.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단은 크렘린박물관에 ‘흑칠나전이층농’의 복원 예산을 지원하고 전시를 도왔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숨어 있던 문화재가 드러나게 된 셈이다.
높이 127.1㎝인 ‘흑칠나전이층농’은 고종의 특명에 의해 당대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농 하단부에 나전으로 해·구름·거북·사슴 등을 부착해 십장생(十長生)을 그리고 니콜라이 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나전칠기에서 자개를 가늘게 실같이 켜내 칼끝으로 눌러서 끊어 붙여 나가는 기법인 ‘끊음질’이 잘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1920년 일본에서 실톱이 들어오면서 유행한 것으로 여겼으나 그보다 20여 년 전에 만든 ‘흑칠나전이층농’에 이 기법이 보여 공예사적으로도 중요한 유물이라는 것이다.
‘고사인물도’는 조선 3대 화가로 꼽히는 장승업의 작품 중에서도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그림들이다.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 등 4점을 크렘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으며, ‘노자출관도’ ‘취태백도’가 이번에 공개된다. ‘노자출관도’는 주(周)나라 벼슬을 내려놓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은거했던 고사를 그린 것이고, ‘취태백도’는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태백)을 묘사한 그림이다. ‘왕희지관아도’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가 목이 유연하게 변하는 거위를 보고 서예의 영감을 얻은 고사를 그렸으며, ‘고사세동도’는 원나라 화가 예찬이 집 뜰의 오동나무도 씻을 정도로 결벽증을 보인 일화를 소재로 삼았다. 높이 174㎝에 이르는 보기 드문 대작이며, 각 작품의 ‘吾園(오원) 張承業(장승업)’ 서명 앞에 ‘朝鮮(조선)’ 국호를 붙인 것은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 사례다. 이 작품이 장승업 만년에 나라의 외교 선물을 전제로 그려졌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백동향로’는 길상 문자를 기준으로 직선과 곡선을 조화롭게 융화해 정교하게 투조(재료의 면을 도려내 도안을 나타내는 기법)한 것으로, 다른 공예품에서 보기 힘든 복잡하고 세밀한 얼개를 보여준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