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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지요? 우리 팀 출발 소식을 알려드려요.”
지난 7일 오후 서울광염교회 이석진 목사님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서울광염교회는 조현삼 담임목사를 단장으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봉사단)을 운영합니다. 국내외 어디든 재난이 발생하면 바로 달려가는 ‘개신교계 119′로 유명하지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결성된 봉사단은 그동안 아이티와 이란의 대지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등 재난이 발생하면 국내 어느 단체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에 이재민을 돕곤 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기독교’ 이야기는 앞세우지 않습니다. ‘힘내세요! 한국 교회가 함께 합니다’란 현수막을 걸고 봉사단이 입은 노란조끼에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이번에도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내심 ‘이번에도 가시겠지’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연락이 온 것입니다. 한국에서 조현삼 성백철 박태성 목사, 손연홍 집사, 윤사무엘 전도사 등 5명이 7일 밤 비행기로 현지로 간다고 했습니다. 이어 다음날부터 교회 홈페이지(https://www.sls.or.kr/_bbs/main)에 현지 소식이 일지 형식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연결되면 글도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인천공항입니다’를 시작으로 ‘구호품 외상으로 사기’ ‘여기는 안디옥입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습니다’ 등 30여편에 이르는 소식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봉사단은 국내와 국외, 또 재난의 종류에 따라 긴급대응 방식이 다릅니다. 국내의 경우엔 생필품을 담은 긴급구호키트를 대량으로 싣고 달려갑니다. 반면 외국의 경우는 햇반, 침낭 등 봉사단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맨몸으로 갑니다. 봉사단의 활동은 국내의 많은 교회들이 후원합니다. 봉사단은 현지에서 구호물품을 구입해서 이재민들에게 나누는 방식이지요. 대개 재난이 벌어지면 물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류망이 무너져서 이재민이 고통받게 되지요. 봉사단은 물품을 있는 곳에서 구입해 재난지역으로 보냅니다. 이번에도 봉사단은 맨몸으로 달려갔습니다. 햇반을 많이 준비했으나 인천공항에서 다 교회로 돌려보냈답니다. 운송료가 비싸서였지요. 서울광염교회 교인들의 십일조 헌금 5000만원과 긴급구호금 1000만원 등 6000만원을 준비했지요. 그나마 봉사단 계좌는 8일 닫았습니다. 남서울은혜교회에서 2억원을 보내주시는 등 성금이 2억 7100만원에 이르자 “현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는 이유로 계좌를 닫았습니다. 봉사단은 후원금을 쌓아놓지 않습니다.
봉사단은 8일 이스탄불을 거쳐 동부 도시 아다나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안타키아(성경 지명으로는 안디옥)까지는 육로로 이동했습니다. 아다나에서는 팀을 두 개로 나눕니다. 한 팀은 아다나에 남아 구호물품을 구입하고, 다른 팀은 지진 피해가 심한 안타키아에 선발대로 들어갔지요. 아다나의 물품 구입팀은 현지에서 담요 2000장, 생수 1.5리터 600개, 500㎖ 2400개, 화장지 288개, 올리브 절임 60통 등을 구매했지요. 그런데 급히 이동하느라 환전을 하지 못해 신용카드 결재를 했는데 1회 결재 한도 때문에 무려 21번에 나눠서 결재하기도 했다는 군요. 쌀 2㎏, 통밀 1㎏, 설탕 2㎏, 밀가루 5㎏ 등을 담은 구호팩 300개, 기저귀 1만 8280개, 생리대 1만 3248개도 준비합니다. 피해 지역에 들어간 봉사단과 연락을 취해 필요한 물품을 계속 추가 구입합니다. 불과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었던 길은 지진으로 파괴돼 시속 5㎞ 속도밖에 내지 못했답니다. 그것도 길 사정, 주유소 사정 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는 여분을 통에 담아 사두지요. 구호 물품을 운반하는 트럭은 10톤짜리 2대로 시작해 최종적으로 8대 분량으로 늘어납니다. 안타키아 현지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콩기름, 렌틸콩, 남녀·어린이용 속옷, 매트리스 등을 추가로 구입해서 보내지요. 아다나에서 물품을 챙기던 성백철 목사는 “거상(巨商)이 된 기분”이라고 적었네요.
현장 사진은 처참합니다. 현장의 참상은 외신을 통해 많이 보도가 됐지요. 제 눈길을 끈 사진은 조 목사님이 건물 폐허 위에 서서 양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설명을 보지 않고는 무슨 장면인지 모르겠더군요. 그 장면은 구조현장에서 ‘조용히’라는 수신호였습니다. 잔해 속에서 사람 소리를 듣기 위해 잠깐씩 모두가 조용히 하는 때가 있답니다. 릴레이로 수신호가 전달되면 일대엔 정적이 흐른답니다. 사람은 물론 지나가는 자동차까지도 숨을 쉬지 않는 듯하답니다. 그렇게 실낱 같은 인기척이라도 듣게 되면 구조에 나서는 것이지요. 조 목사는 ‘인간애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적었습니다.
구호품을 나누던 중 한글로 된 감사 인사장을 들고 온 이재민도 있었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명의로 참전용사 가족에게 보낸 감사 인사장이었답니다. 구호품을 전달한 조 목사는 “우리가 어려울 때 튀르키예가 도와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봉사단의 소식은 현장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단적으로 구호품을 받으러 온 분들의 행색이 ‘이재민 같지 않다’는 것도 있지요. 봉사단에 따르면 ‘겉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랍니다. 현장에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없이 모든 주민이 이재민이랍니다. 집이 무너졌건 금이 갔건 모두 야외에서 천막 생활을 한답니다. 추가 붕괴 위험 때문이지요. 1억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이나 걸어온 사람이나 먹을 것과 잘 곳이 없기는 똑같답니다. 봉사단 역시 천막에서 먹고 자면서 구호품을 나눴습니다. 당연히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씻지도 못했지요. 봉사단에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췌해지는 모습’(?)이 시시각각 느껴집니다.
조 목사님은 12일 주일예배 후 후방 보급기지 역할을 한 아다나로 이동해 7일 서울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호텔’에서 잤답니다. 그 느낌을 이렇게 적었네요. “하룻밤을 아다나 호텔에서 보내고 황홀한 아침을 맞았습니다. 더운 물이 나옵니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땅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조식을 먹었습니다.”
박태성 목사는 지난 10일 올린 소식에서 “우리는 오늘 이곳에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습니다. 희망이 어떻게 자랄지 궁금합니다. 무너진 이곳이 얼마나 멋진 거리로 바뀌게 될지 다시 와서 꼭 확인하여야 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마 많은 국민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단은 긴급구호 활동을 마치고 17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귀국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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