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보물 31점을 포함한 명품 조선백자 42점이 한눈에 펼쳐진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공간. /고운호 기자

백자라는 예술품을 보면서 ‘스펙터클(spectacle·장관)’을 느끼는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지만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선 가능하다. 전시 초입, 외부의 빛을 모두 차단한 661㎡ 공간의 일명 ‘블랙박스’에 발을 딛는 순간 명품 조선백자 42점이 한눈에 펼쳐진다. 기둥도 벽도 없는 광활한 공간에 백자들만 압도적인 시각 효과와 함께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상(史上) 최대 규모의 조선백자 명품전(展)이 28일 개막한다. 5월 28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이다. 이 미술관이 2004년 개관한 이래 도자기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이다.

여기서 ‘명품’이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국보 10점, 보물 21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31점과 그에 준하는 수준의 백자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백자가 모두 59점이니 그 절반이 넘는 백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블랙박스에 전시된 42점의 ‘챔피언스 리그’ 격 백자들은 각각 하나씩의 수직 쇼케이스로 둘러싸여 360도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 /리움미술관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백자는 모두 185점이다. 한 작품 감상에 3분씩만 잡더라도 9시간 반이 걸린다. 리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과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등 국내외 15개 박물관·미술관 소장품이 집결됐다.

방대한 조선백자의 세계 전체를 총괄하는 이번 전시는 블랙박스의 1부 ‘절정, 조선백자’에서 백자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잘 알려진 ‘백자청화 매죽문 호’,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인 조형 감각이 빚어낸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 생활의 미와 깨끗한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 주는 ‘백자 달항아리’ 등은 모두 국보다.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한 층 아래 ‘그라운드갤러리’에선 2~4부가 펼쳐진다. 위층의 장엄한 광경에 압도당한 마음을 한숨 돌리고 백자의 역사와 양식의 흐름을 그 정신세계와 함께 고찰할 수 있는 자리다. 2부 ‘청화백자’는 조선 전기 금만큼이나 비쌌다는 청화 안료가 백자에 쓰인 화려함을 맛볼 수 있다. 여기에선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3부 ‘철화·동화백자’는 조선 중기 이후 전란으로 인해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등장한 철화백자 특유의 강렬함과 변화무쌍한 색의 변화를 보여 준다. 지방에서 제작된 철화·동화백자는 용이 아이들 그림처럼 우습게 그려지거나 발 달린 물고기가 표현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도 보인다.

백자 달항아리(국보). /리움미술관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청화백자는 새롭게 변해 가는 혁신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역’의 ‘군자표변(君子豹變·군자는 표범처럼 신속하게 변혁한다)’이란 말을 떠올릴 수 있고, 철화백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논어’의 ‘군자고궁(君子固窮·군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굳세다)’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4부는 ‘순백자’의 세계다. 흰눈처럼 맑고 청명하다가 푸른빛이 반짝거리기도 하는 고요하고 응축된 색으로, 바르고 선한 풍모를 내비친다. 전시는 강연과 학술 심포지움, 청소년 워크북 등 연계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마련했다. 전시 관람은 무료지만 예약이 필수다. www.le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