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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회담 한국대표를 역임한 백선엽 장군이 육군에 기증한 군 역사 관련 기록물 중 1951년 7월 10일 유엔 대표들이 휴전회담을 위해 개성으로 가기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는 모습. 휴전협정 당시 계급으로 왼쪽부터 버크 제독, 크레이기 공군 소장, 백선엽 소장, 조이 해군 중장,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 호디스 육군 소장.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까지 이어졌던 전쟁입니다. 1953년 7월 27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휴전(休戰) 협정이 체결됐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래도록 우리는 ‘휴전’이란 말을 많이 썼습니다. 남북으로 DMZ(비무장지대)를 둔 군사분계선에 대해 ‘휴전선’이라고 하지 ‘정전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휴전’이 아니라 ‘정전(停戰)’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씁니다. 최근 들어 우리 정부의 인사혁신처에서 나온 자료에도 ‘6·25 정전 70주년’이란 말을 썼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이런 말을 쓴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습니다.

'정전 70주년'이란 문구를 쓴 최근 인사혁신처의 정책브리핑 자료.

무슨 차이일까요. 간단히 글자의 의미로 생각해 볼 때 ‘휴(休)’는 ‘쉬다’는 뜻이고, ‘정(停)’은 ‘멈추다’는 뜻입니다. ‘휴전’이라고 하면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쉰다는 의미, ‘정전’이라고 하면 전쟁이 재발될 것인지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일단 멈추거나 정지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10년 전 2013년에 국방부 공보실에 물어봤더니 “공식적으로 ‘정전’이란 말을 쓰고 있기는 한데, ‘정전’과 휴전’ 사이에 의미상의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고 사병 정식 교육에서도 혼용해서 쓰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기자 생활 중 정부 기관의 용어 사용에서 엄밀성을 기대했다가 당황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단어가 혼용된 것은 당시 전쟁 마무리 시점부터였다고 합니다. 휴전(또는 정전) 협정의 영문본에는 ‘armistice’로 돼 있었습니다. 중국어본에는 이것이 ‘停戰’, 북한 측 한국어본에는 ‘정전’이라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한국 측의 협정문 번역본은 이것을 ‘휴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향후 미묘하게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을 대략 세 가지로 나눠 보겠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1)이승만 정부가 ‘휴전’의 의미를 이용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역사학)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전’은 전투 행위를 멈추는 것이고 ‘휴전’은 적대 행위를 일시적으로 정지할 뿐 전쟁이 계속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북진 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휴전’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죠.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투 행위가 완전히 종료됐다’는 의미를 감안할 때 ‘정전’이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입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운호 기자

◇(2)’정전’이 ‘휴전’으로 발전된 것이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히려 ‘휴전’이 ‘정전’보다 더 발전된 개념이라고 봅니다. 학술적으로 엄밀히 용어를 따져볼 때 ‘정전(truce)’은 ‘국제기구의 중개에 의해 교전 당사국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것’이고, ‘휴전(armistice)’은 ‘교전 당사국이 쌍방의 합의에 의해 적대 행위를 정지시키는 행위, 적대행위의 정지 상태’라는 것입니다. 잠깐, 그렇다면 이건 번역어의 ‘휴(休)’와 ‘정(停)’이라는 한자어를 인식하는 데서 나온 오해일 뿐, 사실은 ‘정전’이 더 일시적인 개념이고 휴전의 전(前) 단계인 데 비해, ‘휴전’이 더 지속적인 개념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김 교수는 “1953년 7월의 일시적인 ‘정전 협정’은 이후의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통해 지속적인 ‘휴전’으로 발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명원 기자

◇(3)그냥 이념 성향에 따라 다르게 쓰는 용어일 뿐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의 말은 좀더 신랄한 것 같으면서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약간 맥빠지는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1953년 당시 상황에선 ‘정전’과 ‘휴전’의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이념적 성향에 따라서 말을 다르게 쓰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얘깁니다. 좌파는 ‘정전’, 우파는 ‘휴전’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한국전쟁 정전협정일 69주년을 하루 앞둔 2022년 7월 26일(현지 시각) 시민들이 미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추모의 벽'엔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뉴스1

◇그런데 과연,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인가?

만약 아직도 종종 듣는 말처럼 “대한민국은 아직 전시(戰時) 상태인 나라”라는 말은 사실로 봐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북한과 공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일종의 수사(修辭)일 뿐, 실제로 74년째 한반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선 곤란할 것입니다.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일 것 같은 ‘휴(休)’라는 글자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될 일이라는 말입니다.

정치학적으로 ‘강화조약의 체결까지는 휴전 중에도 전쟁 상태가 계속된다’는 것은 지금은 1945년 이전의 고전적인 이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2002년 출간된 ‘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휴전은 위의 고전적인 휴전과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분쟁의 사실상의 종결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이용되었다. 군사행동의 일시적 정지가 아니라 전면적 종결을 목적으로 하고, 때로는 그 준수를 감시하는 제3자 기관이 참가하는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왔다. 즉, 국제의 평화와 안전 유지의 관점에서 국제연합의 감시단이 휴전을 감시하는 예도 많다.”

“이것들은 그 후 다양한 분쟁처리절차에 붙일 수 있지만 반드시 평화조약의 체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이른바 전쟁상태는 휴전협정에 의해 종료하고 전쟁(인도)법규의 적용도 일반적으로는 이 협정의 체결에 의해 종료한다. 무력분쟁의 종료 후에 강화조약이 체결되지 않고 휴전이 사실상 전쟁(국제적 무력분쟁)의 종료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휴전 라인이 사실상 국경이 되는 경우도 있다(예: 남북한, 이스라엘).”

판문점에서 유엔군 대표 해리스 소장과 북한의 남일이 협정서에 서명하고 있다. 유엔군 측을 대표하는 미군의 헤리슨 제독과 공산군측을 대표하는 북한군의 남일이 휴전협정에 조인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에는 휴전을 반대했던 한국이 제외된 상태에서 유엔군사령관을 비롯하여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지원군사령관이 휴전협정서에 최종적으로 서명했다. 이로써 3년 1개월2일간의 6.25 전쟁전투행위가 멈추게 됐다.1953년 7월27일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이 다시 발발할 수 있는 위험 지역인 것은 사실이지만, ‘휴전’이든 ‘정전’이든 용어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전쟁 그 자체는 70년 전에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국제질서인 베스트팔렌 체제를 만들어낸 유럽의 30년 전쟁은 이미 1648년에 끝났는데, 그로부터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74년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요? 우리 중 대부분은 1953년 이후에 출생했는데, 평생 전쟁 상태인 지역에서 전시하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혹시라도 ‘주변 좌파 세력과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74년 전쟁 지속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이란 분명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무력에 의한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범죄와의 전쟁’ 같은 용어는 그저 비유이자 수사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한반도는 여전히 (74년째) 전시 상태’란 말 대신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말로 바꿔 쓸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20대가 태어난 지 반세기 전에 발생한 정전(휴전)협정이 그들에게 무슨 원죄(原罪)라도 되는 것처럼 올가미를 씌워서는 안될 일입니다. 전쟁은 끝났고,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전쟁을 우리나 다음 세대가 겪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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