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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으니 아직 풋내기 신문기자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회부에서 맡은 출입처는 경기도였죠. 그중 A시(이하 알파벳은 모두 이니셜이 아님)의 공보실에선 매일 열심히 이메일로 보도자료를 보내 줬습니다. 자료를 낼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날조차 억지로 만들어서 보내는 그 공력이란 때론 눈물겨울 정도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 보도자료에서 거의 매일 등장하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Y시장은 어제 초등학교 운동회장을 방문해서 내일의 일꾼으로 자라날 어린이들이 열심히 몸과 마음을 닦을 것을 당부.’
‘Y시장은 이번엔 무슨무슨 행사장을 방문해서 관계자들에게 훌륭한 행사가 될 것을 당부하고 격려.’
뭐, 자치단체장이 여러 행사에 참석해서 관계자들을 당부하고 격려하는 거야 본연의 임무 중의 하나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테죠. 그런데, 이런 이메일이 매일,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도착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정’ 자료로 실어달라는 얘기였어요. 그런 거 임기 끝날 때까지 기사로 쓸 일 한 번 없을 중앙지에도 말입니다. 당부, 당부, 당…. 그는 무슨 ‘당부’할 일들이 그렇게도 많았던 것일까요.
그래서 한때는 이메일의 용량을 살펴봐서 “이거 또 ‘당부’ 자료군” 하는 판단이 들거나 아예 편지 제목에 ‘동정’이란 제목이 붙여진 것은 그냥 지워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날은 “Y시장께서 오늘은 또 어디에서 무슨 ‘당부’를 하셨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시 공보실의 본연의 임무는 시장의 ‘당부’를 널리 알리는 게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자료를 요청하면 며칠 전 지방신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보내주고, 담당부서에 오후에 전화를 걸면 대부분의 담당 공무원이 항상 자리에 없는 B시보다는 훨씬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B시 공무원들의 특징은, 한 사안에 대해 甲부서에 문의하면 “그건 우리 담당이 아니니 乙부서에 물어보세요.”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 丙−丁−戊부서를 거쳐 己부서쯤에서 “아, 그거 저희는 잘 모르고요. 甲부서에서 잘 알고 있죠”라는 답변을 듣기가 무척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창 B시의 난개발 문제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때쯤 해서 이곳의 시장은 세속의 모든 여론이 귀찮아졌는지, 아예 한 3주간 러시아와 중국과 제주도에 출장을 갔다 왔습니다. 중국의 방문지에는 ‘천하 절경’으로 유명한 구이린(桂林)도 포함돼 있었어요. 아마도 B시의 관광 진흥을 위해 뭔가 영감을 얻고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C군(郡)에선 보건소를 확장하기 위해 이웃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폐쇄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선 오히려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나가는 추세에서, “사립 어린이집이 국공립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군민을 위한 보건소 증축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꿋꿋이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소득이 적고 부모가 모두 일터에 나가는 일이 잦은 농촌 지역에서 그나마 저렴한 보육료로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던 국공립 어린이집은 이제 C군에서 단 한 곳 남을 지경이 됐습니다.
보건소를 늘린다면 그 옆의 보육시설은 당연히 이전을 해야지, 무작정 폐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는 반문에는 그저 “마땅한 부지가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C군의 면적은 600㎢가 넘습니다). 군수는 이 문제로 주민들과 수차 면담을 가졌지만 늘 “여러분의 뜻은 잘 이해하지만…”으로 시작해서는 “방침이 정해진 일이니 되돌릴 수 없고 여러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결론을 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기초자치단체의 단체장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주민들을 대했습니다. 때에 따라선 시장·군수 관사를 내놓아 다른 용도로 쓰게 하고, “늘 주민과 만날 수 있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민원을 가지고 온 주민들 앞에서는 매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습니다(이 점에 있어서 영화배우 출신이었던 당시 D시의 시장은 아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장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성심성의껏 해 줬습니다.
그러나 ‘말’뿐이었습니다. 정치적인 말의 성찬(盛饌)의 연속일 뿐, 위민(爲民)을 모토로 삼겠다는 모션의 지속일 뿐, 진정으로 시스템을 바꿔 본질적인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모험이 걸린 현안에는 쉽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어요. B시의 전(前) 시장은 지방선거 때 “임기 중에 우리 시의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 해결의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자평(自評)했지만, 건축업자에게 편의를 봐 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전임 시장, 군수가 물러난 그날부터 검찰에 들락거리는 일은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칠순에 가까운 D시의 전 시장은 반 년 가까이 검찰의 추적을 피해 은신하고 있었습니다. 인사(人事)의 편중과 ‘논공행상’의 문제에 이르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 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앎[知]이 지위를 유지할 만해도 어짊[仁]이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비록 지위를 얻더라도 반드시 잃게 될 것이다. 앎이 미치고 어짊이 이를 지켜도 위엄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앎이 미치고 어짊이 이를 지키고 위엄으로 대하더라도 사람을 움직임에 예(禮)로써 하지 않는다면 선(善)하지 못할 것이다.”
지자체의 단체장이 된 인사들은 누구보다도 지역 사정에 훤할뿐더러 현안을 해결하려는 욕구로 똘똘 뭉친 두꺼운 공약집을 들고 선거에 나왔던 사람들입니다. 앎[知]이 부족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짊[仁]으로써 그 지위를 계속 지킬 수 있을까요? 위엄과 예(禮)는 또 어떨까요, 겉으로만 위엄과 예의를 갖춘다고 그것이 완성되는 것일까요? 원칙과 공의(公義)를 따르는 사심없는 태도, 진심과 경의를 갖추고 스스로 낮추어 민(民)을 대하는 모습에서 위엄과 예의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헛기침 몇 번 하고 “여러분의 입장은 이해합니다만…” 운운하는 정치적 멘트의 남발이 횡행한다면, 이미 위엄과 예의는 차 포 떼어놓듯이 시작부터 제쳐두고 업무를 수행하는 게 아닐까요. 모든 겉멋과 겉치레와 의식적인 ‘당부’와 격려사와 순시와 훈화와 담화와 전시행사와 판공비 투입 따위 하나마나한 일들은 그저 ‘올바른 자치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별로 필요 없는 가식(假飾)들’로 치부해버리고, “지금 당장 시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로 곧바로 월반(越班)해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4년 후 임기가 끝난 뒤 “별 대과(大過)없이 임기를 마친 것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운운하는 멘트를 부끄럽게 여기고 “내가 큰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민들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나둘씩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고 말할 수 있는 데서 스스로 뿌듯할 수 있는, 그런 자치단체장이 한 명 두 명이라도 모습을 보이면 정말 안 되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뒤로 지방선거는 다섯 차례나 더 치러졌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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