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은 6·3 정읍선언을 가리켜 남북 분단의 원흉이 이승만이라고 오도하고 있으나, 북한을 소련의 위성 공산국가로 세우려는 야심을 미리 간파한 선지자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자유 민주 정부를 세워 자유 통일국가 건설을 이루려고 한 역사적 대선언이었습니다.”

23일 정읍선언 77주년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우남네트워크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23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신철식 우남네트워크 상임대표회장의 취임사에 박수가 터졌다. 이승만의 역사와 건국 정신을 알리기 위해 2년 전 출범한 우남네트워크가 주최한 6·3 정읍선언 77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와 상임대표회장 취임을 겸한 자리였다. 신 회장은 “정읍선언은 ‘이승만 독트린(doctrine)’이라 불릴 만한 대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정읍선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6년 6월 3일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이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조직해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에 호소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던 선언이다.

세미나에서 ‘이승만의 정읍선언과 대한민국’을 발표한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는 “이승만은 광복 이후 줄곧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소련이 1946년 2월 이미 북한에 사실상의 정부를 세우고 남한까지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했다”며 “이승만의 정읍선언은 분단 선언이 아니라 우선 남한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소련을 몰아내고 통일국가를 이루려는 새로운 통일 선언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토론자인 양준석 국민대 교수는 “(정읍선언은) 해방됐지만 혼돈 속에 있던 국민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조직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의 표출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오영섭 대한민국사연구소장은 “이승만이 남다른 정치적 식견과 국제 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인민과 국가의 자유와 복리를 위해 용감하게 정읍선언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당대의 정치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건국운동가였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창묵 얼역사연구소장은 “이승만이 정읍에서 중대한 선언을 한 것은 동학농민혁명과 항일애국운동 등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