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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73) 추기경이 지금 휴가를 맞아 귀국해 한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유 추기경은 지난 주말 서울대교구청에서 기자간담회와 북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라자로 유흥식’(바오로딸) 출간을 기념한 행사였지요. 책은 올해 초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됐습니다. 유 추기경이 교황청 국무원 소속 프란체스코 코센티노 신부와 대담한 내용입니다. 이탈리아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라자로 유흥식:동쪽에서 번개가 치듯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답니다. 이 출판사의 ‘우리 시대의 증인들’ 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고 하지요. 당시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천사를 썼다는 뉴스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지요. 이 ‘추천사’ 덕분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 추기경의 관계가 다시 조명받은 것이지요.
유 추기경은 한국의 선배 추기경들과는 걸어온 길이 달랐습니다.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은 모두 서울대교구 출신입니다.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를 맡고 있던 중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그래서 ‘서울대교구장=추기경’으로 인식되곤 했지요.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 출신입니다. 대전교구장 주교를 맡고 있던 그는 지난 2021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일약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됐습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의 교황청 장관이 된 것이죠. 장관 임명과 동시에 주교에서 대주교로 승품됐고, 2022년엔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서울대교구 출신이 아니면서, 대전교구장에서 교황청 장관으로 직행하고 추기경에 서임되는 새로운 ‘루트’를 보여줬습니다. 천주교는 교구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구가 다르면 주교라도 잘 모를 수가 있지요. 유 추기경도 그랬습니다. 전국의 다른 교구 신자들에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된 ‘라자로 유흥식’은 유 추기경의 인생과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저부터 잘 몰랐던 내용이 많았습니다.
역대 추기경에 대해서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정치가형 추기경’이었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학자형’, 염수정 추기경은 ‘행정가형’ 혹은 ‘관리자형’ 추기경의 이미지가 있지요. 저는 유 추기경은 어떤 유형으로 이름 붙이면 어울릴까 생각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직진형 추기경’이란 것입니다. 엄숙·경건·겸손 등의 이미지가 강한 한국 가톨릭 분위기와는 다소 다른 면입니다.
책에서 유 추기경은 스스로 자신이 ‘직진형’임을 털어놓습니다. “목표를 세우면 직진하는 성격”이라고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전진할 때,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나 장애물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그저 단순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예로 든 일화가 유학생 시절 주교를 수행해 요한 바오로2세를 알현했을 때 던진 말입니다. “교황님, 저는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을 준비가 돼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과격(?)한 말입니다. 또한 공개적으로 말하기엔 다소 쑥스러운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 추기경은 직진합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란 ‘다른 사람 눈치’라는 뜻이겠지요.
‘생명을 내놓을 준비’는 최근에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작년 8월 추기경 서임식장. 새로 임명된 추기경들의 인사를 받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독 유 추기경이 뭐라고 말하자 파안대소하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자 유 추기경이 털어놓은 비밀이 바로 “교황님, 저는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였습니다. 교황은 유 추기경의 이 말을 듣고 “좋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고 화답했다지요.
유 추기경의 ‘직진’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답니다. 집안 식구 중에 천주교 신자가 아무도 없었지만 혼자 세례를 받았고, 홀어머니의 반대에도 신학교에 진학했답니다. 오죽하면 입학 동기가 ‘어떻게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가 신학교에 입학해서 사제 성소의 길을 걸을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고 할 정도였답니다. 신학생 시절 입대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던 전방 부대에 배치됐을 때에도 상관에게 건의해 일요일엔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답니다. 오는 9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의 아치형으로 패인 벽(벽감)에 성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을 세우는 일도 유 추기경의 ‘직진형 추진력’ 덕분일 것입니다. 성베드로 성전 벽감에 동양 성인의 조각상이 설치되는 것은 김대건 성인이 처음입니다.
‘직진’은 ‘실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유 추기경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 성직자로서의 실천’은 ‘주님의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을 생활에 실천하는 것이지요. 그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세 가지 기둥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사는 것,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누는 것 그리고 어려움에 부딪힌 이들, 곧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랍니다. 그는 “이 세 가지 기둥이 우리 시대의 복음화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꼽지요.
사실 실천에도 여러 방법이 있지요. 그는 구체적으로 솔선수범과 친절을 예로 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추천사에서 ‘다정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지닌 추기경’이라고 유 추기경을 표현하고 있지요. 유 추기경은 주교 시절, 사제들이 면담을 신청하면 ‘무슨 문제로 나와 만나고 싶은가?’ 묻지 않고 일단 식사나 차를 나누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했다는 군요. ‘무슨 문제?’를 묻는 순간 벽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젊은이들과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의미를 주는 모범을 갈망하고 있다. 설교라 할지라도 말은 잘 믿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아름답고 진실한 증거를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하고, 자신을 열며, 너그럽게 자기를 내어놓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가수’ 이야기를 꺼내지요. “오늘날에는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가수와 같은 음악가들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메시지를 던지며 젊은이들의 감정과 정서, 아픔과 희망을 대변합니다.” 생전의 설악무산 스님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가 세계 젊은이들을 매혹시키듯 선승들의 화두도 그래야 한다”고 했던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유 추기경의 ‘직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첫 교황청 장관이라는 새 길을 연 유 추기경. 대담을 정리한 교황청의 프란체스코 코센티노 신부는 ‘여는 글’에서 “순교자들의 피로 비옥해진 젊고 활기찬 동양의 교회에서 오신 그분의 묵상과 통찰이 마치 ‘번개처럼’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서양 중심의 가톨릭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유 추기경이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가톨릭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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