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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조선일보 지면엔 법주사에서 삭발한 독일 잼버리 대원들이 “스님 같은 삶 살래요”라고 말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번 잼버리는 한국 종교계의 ‘호국 DNA’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잼버리와 종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부대 행사에 대원들이 참여하는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이번 새만금 잼버리가 예상치 못한 많은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한국의 종교계 즉 ‘K종교계’가 눈길을 끌게 됐습니다. 지난 12일 잼버리가 공식 폐영한 후 윤석열 대통령도 사회 각계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하면서 ‘종교계’를 언급하기도 했지요.
원래 조계종은 잼버리가 열리는 전북 새만금 인근 지역의 금산사, 선운사, 내소사 등에서 연인원 9000명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산사의 계곡에서 해먹을 걸고 낮잠도 자고, 물놀이 등 휴식을 취하면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런 프로그램이 조용히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 여러분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시겠지만 잼버리는 시작과 거의 동시에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습니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화장실 등 위생 문제도 대두됐지요. 영국과 미국은 야영장을 떠나기도 했고요. 한마디로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토요일이던 지난 8월 5일 조계종은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긴급 지침을 발표했지요. 전국 25개 교구 본사(本寺)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147개 사찰 그리고 조계종이 직영하는 한국문화연수원(충남 공주) 시설 등 170개 사찰을 잼버리 참가자를 위해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참가국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야영지나 템플스테이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주말이었지만 조계종은 긴급히 각 사찰별로 수용 가능한 인원을 파악하고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협의했습니다. 이튿날인 6일 오후까지 전국의 사찰들로부터 수용 가능 인원은 약 7300명이라는 결과까지 취합했습니다. 월요일이던 7일엔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 방문은 이날 오전 갑자기 결정됐습니다. 그만큼 잼버리 상황이 걱정됐던 것이지요.
이 무렵, 시설이나 폭염이 아니라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태풍 카눈이었지요. 태풍의 진로가 한반도 정중앙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것으로 예보 되자 전체 참가자를 새만금 야영장에서 철수해 수도권으로 이동하기로 결정됐지요. 이때부터는 개신교계가 잼버리 지원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수도권 대형교회와 기도원 등이 시설을 제공했습니다.
잼버리 참가 대원들의 수도권 철수 작전은 8일 하루 종일 이어졌지요. 이들은 기업체와 지자체, 학교 그리고 종교시설 특히 개신교 시설에 분산 수용됐습니다. 경기 용인 죽전의 새에덴교회에는 오후 1시쯤 한국 스카우트 430명과 중국 스카우트 50명 등 480명이 도착했습니다. 교회는 교육관 등을 비우고 마룻바닥에 매트와 담요를 제공해 스카우트 대원들이 잘 수 있도록 준비했지요. 이날 오후 5시쯤에는 경기 파주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오산리기도원)과 영산수련원에 한국, 프랑스, 스페인 대원 2100여명이 도착했습니다. 이날 오후 충남 천안 백석대 기숙사에도 스웨덴, 마다가스카르, 벨기에, 니카라과, 세네갈, 카메룬 등의 잼버리 대원 1600여명이 도착했습니다. 경기 용인 중앙예닮학교에서도 230명이 묵었습니다.
교회 기도원 등 시설이 잼버리 대원들을 기다리며 비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올 여름은 모든 종교 시설이 ‘대목’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맞는 여름 휴가철이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2020년 이후 4년 만에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고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올해 여름엔 종교 기관별로 계획이 꽉 차 있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오산리기도원도 당초 8~11일 연인원 1만명이 참석하는 ‘전국 초교파 여성 금식 기도 대성회’가 잡혀있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7일 이 행사 장소를 급히 서울로 옮기고 기도원을 잼버리 대원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시설을 임시 숙소로 이용한 잼버리 대원들이 연인원 5000여명에 이릅니다.
개신교계는 야영지를 철수한 대원들에게 생수와 아이스크림, 맛있는 식사,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환대했습니다. 영국 대원 2000여명은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에서 각국 스카우트 대원 2000여명을 초대해 ‘스카우트 문화의 날’ 행사를 열고 서로 배지를 교환하는 등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원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불교계도 숙소 제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참가 대원들에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법주사를 찾은 독일 대원들이 삭발하고 “앞으로 스님의 삶을 살겠다”고 할 정도로요.
이번 잼버리를 보면서 K종교계는 ‘호국(護國) DNA’가 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는 정신이지요. 조계종이 170개 사찰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기사에는 ‘역시 호국 불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개신교계도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세계의 젊은이들을 도왔지요. ‘IMF 금 모으기’ ‘태안 기름 제거’ 등에서 보여준 종교계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우리 종교계만의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특정 행사에 종교계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지요. 앞으로는 종교계까지 나서서 호국 DNA를 발휘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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