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카페인가, 게스트하우스인가, 사찰인가.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저스트비(JustBe) 홍대선원’은 이 모든 요소를 다 끌어안은 곳이다. 지하 1층~지상 5층(6층은 옥상)엔 공양간(식당), 카페, 남녀 요사채(숙소), 사무실, 법당 겸 명상 수행 공간이 배치된 이 공간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방문한 홍대선원 1층 카페에선 청년 대여섯명이 일본 출신 비구니 법여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고, 5층 법당에선 법증 스님이 한 여성에게 태극권을 지도하고 있었다. 아침 예불을 비롯해 춤, 그림, 소리, 다도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참여는 의무가 아니다. 금지 사항은 ‘고기, 술, 섹스’, 지켜야 할 것은 ‘존중과 친절’이다. 스님들과 스태프들은 당번을 정해 항상 1층 카페에서 손님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한다. ‘바텐더’가 아닌 ‘티(tea)텐더’다. 그동안 10~70대 다양한 국적의 연인원 6000명이 숙박과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곳을 다녀갔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 MZ세대와 외국인들의 핫플레이스인 이곳에 선원을 연 주인공은 준한 스님(45). 불교 용어로 입전수수(入廛垂手), 산사로 찾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과 함께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준한 스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다. ‘모태 불자’였던 스님은 대학생 시절 큰 교통사고를 겪고 생사(生死) 문제를 깊이 고민하면서 불교를 다시 찾게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방학 때면 귀국해 서울 화계사, 계룡산 무상사 등에서 안거하던 그는 2006년 1월 정식 출가했다. 은사는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찾던 중 숭산 스님과 현각 스님의 책과 법문 그리고 수행을 하면서 두려움, 불안, 의심이 모두 가짜이고 꿈이라는 것을 알게 돼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해인사 강원과 율원에서 6년 공부했고 1년 반에 걸쳐 중국의 운남·사천·샹그릴라·티베트, 네팔 카트만두·포칼라·안나푸르나·룸비니, 인도 부다가야·다람살라·라다크 등을 홀로 만행(萬行)한 이후 소백산 양백정사에서 8년간 칩거 수행했다.
홍대 앞과 인연이 닿은 것은 2021년.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게스트 하우스 건물주인 불자(佛子)가 스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두문불출 1000일 기도 중 100일 정도가 남았을 때였다. “대학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제가 건물은 보지도 않고 주소를 받아 지도부터 펼쳤습니다. 공항철도로 인천공항서 52분, 김포공항에선 15분이더군요. 그 자리에서 임대 계약했습니다.”
스님의 계획은 이랬다. “코로나로 왕래가 끊긴 동안 한류는 전 세계로 확산했습니다. 언젠가 팬데믹이 끝나고 전 세계인이 한류를 찾아 한국에 올 때 물길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명상도 세계적 트렌드가 됐고요. 한국의 선(禪) 불교, 명상 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산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 출발 지점이자 플랫폼으로 ‘명상+게스트 하우스’를 열기로 했다는 것.
137개 베드를 55개로 줄이고 명상 공간을 만드는 등 개조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는데, 공사를 거의 직접 했다. 가구와 가전 제품의 80~90%는 당근마켓에서 조달했다. ‘홍대 앞에서 어떤 스님이 직접 공사하더라’는 소문이 나자 청년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그런 자발성은 홍대선원의 소중한 전통이 됐다. 지하 1층 공양간 벽엔 떡, 과자, 과일 등을 보시한 사람과 물품 목록이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후원회원도 200명에 이른다. 개원 1년 만에 월세는 감당할 수준이 됐다.
공양간에서 스님과 대화하는 도중 튀르키예 여성 투숙객이 들어왔다. 스님은 “필 프리(Feel Free)”라고 인사했다. ‘편하게 하시라’는 평범한 인사였지만 그 속에 홍대선원이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 있었다. 스님은 “이곳은 청년들의 놀이터. 방문객들에게 주는 것은 따뜻함과 친절. 저를 포함해 상주하는 스님 4명은 나침반이자 서포터”라며 “앞으로 국내외에 2호, 3호점을 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