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동일교회 이수훈 목사가 지난 5일 주일 예배 후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어린이집과 방과 후 학교로 어린이를 돌보는 이 교회는 저출생 문제 해결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신현종 기자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 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당진동일교회 이수훈 목사가 1996년 개척 당시 인근 아파트에 붙였던 아이 돌봄 안내 벽보. /당진동일교회 제공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마침 당진엔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서발전 등 기업이 들어왔다. 3교대 근무와 맞벌이가 많았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교인 1만 5000여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000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00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00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지난주 찾은 교회는 32번 국도에서 약 1㎞쯤 농로를 따라 들어간 곳에 있었다. 벼가 익어가는 논 사이로 이어지다 산으로 접어드는 길, ‘이 길이 맞나?’ 의문이 들 때쯤 교회가 나타났다. 골짜기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이수훈 목사는 “아이는 교회가 돌볼 테니 걱정 말고 낳으시라고 권하고 있다”며 “3000가정 정도는 자녀가 둘 이상이며 여섯 자녀 가정도 있다”며 웃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00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때 교회 이름을 ‘꿈꾸는 교회’로 개명하려고도 했지만 아이들이 “나는 당진 동일교회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이름을 바꾸면 어떡하느냐”고 반대해 무산됐다고 한다.

당진동일교회가 지난 4월 개최한 출산돌봄 컨퍼런스 때 교회 어린이들이 만든 포스터. '혼자는 싫어요, 여럿은 좋아요' '엄마, 더 낳아줘!' 등 어린이들의 생각이 담겼다. /김한수 기자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 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라며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저출생 극복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자 교회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지도 않았던 작년에만 전국 50여 교회의 탐방단이 교회를 찾아 비결을 배워 갔고 지난 4월엔 교회가 전국 목회자 1200여 명을 초청해 3박 4일간 ‘대한민국 출산 돌봄 콘퍼런스’도 개최했다.

이 목사는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이라고 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진=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