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명상을 해보세요.”
오후 11시가 지나자 손목에서 스마트워치가 알람을 울리며 “명상을 하라”고 권한다. 점심시간 길거리에서는 ‘마음챙김’ 광고 전단을 나눠주고 ‘점심 먹고 명상 어때?’ ‘직장인 명상 프로그램’ 등 광고 배너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인터넷 서점에 ‘명상’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천 종의 목록이 뜬다. 앱 스토어에 ‘명상’ ‘마음챙김’을 입력해도 마찬가지.
‘명상’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유발 하라리 등 유명 인사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상에서 명상을 체험하고 수련하고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 강박 등에 짓눌린 현대인들은 이제 몸 건강에 대한 관심만큼 마음의 건강, 마음 근력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음 공부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이들을 격주로 소개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숫자를 붙여보세요. 일곱까지요. 다섯 세트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숨을 쉬면서 숫자를 세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눈을 감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코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숫자를 헤아렸다. ‘셋’까지는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놓쳤다. 온갖 생각이 그 숫자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해야 할 일, 잘못한 일, 이 사람, 저 사람…. 다시 정신 줄을 잡고 ‘하나, 둘, 셋...’. 이번엔 ‘일곱’이 아니라 ‘열(10)’을 넘어갔다. 관성적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동안 딴생각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호흡은 놓쳤다. ‘잡생각을 하면서도 숫자는 셀 수 있다니...’ 스스로 놀랄 무렵 강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 너무 애쓰지도 말고, 놓쳤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판단하지도 말고, 단지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호흡은 닻입니다.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큰 위안이 됐다.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겨우 ‘하나에서 일곱까지’ 다섯 세트를 마칠 수 있었다. 이윽고 은은한 싱잉볼(singing bowl) 소리와 함께 강사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천천히 마무리하면서 눈을 떠보세요.” 눈앞 통유리창 너머엔 횡으로 검붉은 선이 나타났다. 저 멀리 동해 수평선에서 해가 치솟기 직전이었다. ‘아...’ 저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지난달 경북 영덕 칠보산 자락 삼성인력개발원 명상센터의 3박 4일 삼성 직원 대상 명상 교육 중 3일 차 ‘새벽 명상’ 풍경이었다. 삼성은 지난 2017년 5월 이곳 약 2만8000평 대지에 연면적 8000평 규모로 교육동 2채(명상실 4곳), 숙소동 7채(300명 수용), 커뮤니티동 1채로 구성된 명상 전용 연수원을 열었다. 명상센터를 만든 것은 임직원의 마음 건강을 관리하고 행복감을 높여 삶에 몰입하도록 도우려 함이다. 2010년대 들어 국내 자살률이 치솟는 사회적 배경과 글로벌 기업들이 임직원의 마음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상황 등을 고려했다. 단, 프로그램에서 종교색은 배제했다. 2013~2014년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각계 조언을 받아 국내 최초로 기업형 명상센터를 개원한 것. 개원 이후 5만5000여 삼성 임직원이 명상 교육을 받았고, 주말 ‘힐링 캠프’에 참가한 임직원 가족도 26만명에 이른다.
참가자들은 3박 4일 동안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첫날 ‘먹기 명상’과 ‘숙면 요법’을 시작으로 ‘숲 명상’ ‘요가 명상’ ‘공감 명상’ ‘별빛 명상’ ‘새벽 명상’ ‘바다 명상’ ‘차(茶) 명상’ 등이 이어진다. 영덕 명상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격리’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곳인 데다 센터 내에선 ‘디지털 디톡스’가 기본. 프로그램 중에 스마트폰은 전원을 끄고 내놓는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다. ‘합법적 연락 두절’인 셈.
‘호흡 알아차리기’는 모든 명상의 출발점.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다. 인간의 생각은 잠시만 방심해도 과거와 미래를 향해 내달린다. 그렇게 달려간 종착점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정작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지금’은 놓치는 것이다. 지금 알아차려야 할 행복도 놓친다. 센터는 ‘알아차림’을 위해 다양한 도구를 마련했다. 식당 식탁마다 놓인 30분짜리 모래시계가 대표적. 첫날 저녁 ‘먹기 명상’에서는 음식 모양과 색깔, 향 등을 충분히 느끼면서 먹도록 안내한다. 대화나 휴대폰 검색 없이 30분 동안 먹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흔히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정작 ‘먹기’에 얼마나 부주의하게 살아왔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공감 명상’ 시간에는 ‘행복, 긍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장소, 활동, 순간을 연상하라’고 권한다.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붙이며 그 행복했던 순간, 장소에 있는 듯 생각해보라고 했다. 60여 명이 앉은 명상실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강사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위해 뛰고 있는 심장의 존재를 잠시 느끼고 심장에 ‘고맙다’고 전해보라” “일과 사람들을 챙기고 친절하게 배려하면서 정작 나에겐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지 않았는지, 나에게 ‘수고했다. 애썼다’고 전해보라”고 했다. 강사들은 명상 과정에서 거듭 ‘친절’과 ‘부드럽게’를 강조했다.
다양한 명상을 체험하면서 참가자들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모습이었다. 2017년 개원 때부터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는 김도연 강사는 “과거 보직 해임된 분이 참가한 적이 있다”며 “입소할 땐 눈에 독기와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는데 나가실 때에는 풀렸고, 퇴소 후에 따로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재현 강사 역시 “코스 마지막에 울음을 터뜨리는 남성 참가자가 많다”며 “개원 초기엔 40~50대의 반응이 좋았다면 점차 MZ세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도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삼성전기 송재윤(29)씨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가장 행복했던 장소를 띄워놓고 호흡 명상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SDS 오신일(42)씨는 “올해 일이 많아서 탈진할 상태였는데 가족도 동의해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며 “입사 17년 만에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명상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도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설과 프로그램이 더 확충돼 2~3년에 한 번씩이라도 필요한 직원들이 명상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신입 사원, 임원 승진, 글로벌 리더 육성, 창의성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프로그램이 ‘채움’을 목표로 한다면, 명상은 ‘비움’이 목표다. 안상민 삼성인력개발원 창의명상팀장은 “명상 교육 후 후속 점검을 하고 있는데, 회복력·공감력·몰입력과 리더십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육을 마친 후 각 사업장에서 지속적으로 명상할 수 있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덕=김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