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신원 미상 남성에게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헬기를 통해 도착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뉴스1

최근의 정치인 대상 테러에 대해 ‘과거 해방 정국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좌우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유력 정치인에 대한 테러와 암살이 횡행했던 상황이 21세기에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광복 직후 우익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송진우는 1945년 12월 반탁(反託·신탁통치 반대)을 둘러싸고 우익 내 의견 대립을 보이던 상황에서 서울 원서동 자택에 침입한 한현우 등 암살단의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역시 우익 인사로 독립운동가와 지주세력 등이 주축이던 한민당 소속 정치인이었던 장덕수는 1947년 12월 제기동 자택에 찾아온 청년들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암살범이 한국독립당 소속이어서 우익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도 좌파의 리더로 해방 공간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여운형은 1947년 7월 차를 타고 가던 중 혜화동 로터리에서 총탄에 맞아 암살당했다. 여운형이 당했던 테러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1945년 광복 이후 2년 동안 모두 10차례의 테러를 당했는데, 괴한에게 곤봉으로 얻어맞고 밧줄로 결박되는가 하면 신당동 산에서 협박당하다가 벼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1947년 3월에는 서울 계동 자택의 침실이 폭파당했으나 마침 외출한 상태여서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실패한 암살 계획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좌파인 남로당이 김성수, 장덕수, 김준연, 조병옥 등 한민당 간부들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다 적발된 일도 있었다. 남로당은 전국 각지에서 우익 단체 지도자와 5·10 선거에 입후보한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벌였다. 중도 우파의 지도자인 안재홍이 서대문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저격당했으나 총탄이 비켜 가 무사했던 일도 있었다.

테러와 암살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던 유력 정치인 김구는 1949년 6월 거처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안두희는 47년이 지난 1996년 ‘민족 정기를 세우겠다’는 버스 기사의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해방 정국을 연상케 하는 테러 사건이 지금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여야 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지지자 일부가 극단적·맹목적 성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타협과 협력을 위한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