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이태경 기자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불거지는 지금의 사태는 한국 현대사에서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 정국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방 직후 상황과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극단의 정치’로 치닫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해방 정국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에게 의견을 들었다. 심 교수는 한국정치학회장과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냈으며 ‘해방 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 등 저서를 냈다.

-지금 정치 상황이 ‘해방 정국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 현안을 놓고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즉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으로 상대를 배제하고 제거하려는 행태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유력한 상대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정국 당시 발생한 테러는 극단적인 정치를 반영한 것인가.

“상대 진영의 유력 정치인을 제거하는 것이 정권 장악의 첩경이라고 생각한 광신적 지지자들이 테러를 일으켰다. 이는 자신감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라이벌을 제거하지 않고는 정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기에 테러가 빈발했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정치인들이 테러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나.

“당시 정치인들이 직접 테러를 사주한 것은 아니더라도 동기 부여를 했다고는 할 수 있다. 해방 정국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한편으로는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정치권과 유사 언론이 디지털 미디어 등을 이용해 타 집단에 대한 혐오를 지지 동원의 메커니즘으로 사용한다. 광신적 지지자들은 이렇게 디지털 정치적 부족주의를 강화하면서 상대 정치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강도를 키워왔다.”

그래픽=정인성

-해방 정국에서 테러가 발생한 구조적인 이유가 있나.

“당시는 정치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외적인 요인에 기대려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미·소의 냉전에 편승해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민족 내부적인 역량에 의해 일제를 몰아내고 해방을 이룬 게 아니라 미군과 소련군이라고 하는 외부적인 역량에 의해 해방이 되고 또 분단이 되다 보니, 많은 정치인이 외세에 의존해서 손쉽게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지 않나.

“당시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 대결’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러한 거대 갈등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 정당의 정책 차이가 이념 대결의 시대처럼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하는 대신 증오를 키우고 있다.”

-테러는 주로 어떤 국면에서 일어나나.

“정국이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을 때다. 1945년 12월 반탁(反託·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둘러싸고 임시정부 측이 과격한 반탁을 추진한 반면 한민당 수석총무였던 송진우는 좀 더 온건한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이 생겼다. 송진우는 1945년 12월 30일 피살됐다. 여운형은 1947년 7월 암살되기 전부터 좌우 양쪽으로부터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다. 김규식과 함께 추진한 좌우합작운동으로 정국의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갈까 견제했던 것이다. 같은 해 12월 장덕수 암살 사건은 이승만과 김구 진영이 미소공동위원회 참여를 거부한 것과 다르게 한민당 측이 참여하려 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장덕수는 한민당 정치부장이었다. 1949년 김구 암살 사건은 정부 수립 후 김구 측이 정부와 계속 갈등 관계였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이런 대립과 갈등이 광신적 지지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정치인 테러 사건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국은 더욱 경색되고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해결보다는 힘에 의존해 상대를 제압하려는 풍토가 정착됐다. 정치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작용하게 되고, 통합보다는 분열적 요소가 커지게 됐다. 나중에는 정치권 전반을 불신하게 하는 폐단이 생겼다.”

-테러로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나.

“그렇지 않았다. 나와 대립하는 상대가 사라지면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테러를 일으켰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해방 정국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나.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문제보다는 합의 가능한 미시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민생과 직결된 문제, 국가와 민족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부터 논의하고 단계적으로 풀어 나간다면,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이것이 타협과 협상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