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달력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년 달력을 준비하는 곳이 있습니다. 조계종의 사업지주회사인 ㈜도반HC(사장 각운 스님)은 최근 제4회 ‘불교 달력 사진·미술 작품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25년도 달력에 사용될 참신하고 감각적인 불교 예술 콘텐츠를 선정하는 것이 공모전의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기간은 지난 23일부터 3월 31일까지이고 대상부터 금상, 은상, 동상, 입선까지 수상하는데 대상은 상금이 400만원입니다.
조계종에서 만드는 달력인만큼 선정 기준은 불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찰(사찰 풍경, 석탑, 적멸보궁, 마애불, 석등, 암자 등) 불교(동자승, 부처님, 부처님 일대기, 수행, 꽃살문, 연등 등) 문화유산(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국내외 성지) 등 세부 주제를 제시하네요. 공모전 이름처럼 그림(캘리그라피, 일러스트 포함)과 사진을 모집하는데 사계절을 담고 1~12월에 맞는 12컷을 제출해야 한다네요.
과문한 탓이겠지만 저는 4회째가 되도록 달력 그림·사진 공모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도반HC는 “1~3회 공모전에서 총 44점을 선정해 매년 15종 정도의 달력을 제작해 전국 사찰과 신행단체 등의 주문을 받아 공급했다”고 하네요.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고 하고요.
역대 공모전 입상작을 살펴보니 2·3회는 대상에 일러스트 작품이 선정됐네요. 2회 때는 최길수씨의 ‘꿈이 피는 봄이 오면’(동자승 일러스트)였고, 3회는 정혜윤씨의 ‘우리 곁의 관세음보살님’이 선정됐습니다. 두 작품 모두 따뜻한 느낌의 그림으로 12개월을 표현했습니다. 그림, 사진, 펜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입상했더군요. 주제도 ‘수행의 길’ ‘심우도’ ‘선(禪), 그리고 사찰’ ‘가자 부처님 나라로(해외 성지 사진)’ ‘수행의 길’ ‘마애불 자비로움을 새기다’ 등과 전문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한 ‘늘 가고 싶은 곳, 가람’ ‘불이문(不二門)’ 등의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입상작 리스트를 죽 살펴보다 뜻밖의 이름도 발견했습니다. 작년 제3회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은 분 중엔 송광사 주지를 지낸 자공 스님이 있었습니다. 자공 스님은 송광사의 문화상품으로 각광받은 ‘빨간 목탁’을 만든 분이기도 하지요. 도자기로 호두알만한 목탁을 구워 갖가지 색깔을 입힌 ‘빨간 목탁’은 송광사를 찾는 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요. 작년 수상작은 연꽃과 원을 기본으로 다양한 도안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자공 스님은 통화에서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게 전부”라고 겸손해했지만 솜씨가 전문가 못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주변의 권유로 출품해 동상을 수상하고 달력으로도 제작됐지만 제가 따로 주문해서 배포하고 그러지는 않았다”며 웃었습니다.
종교계에서 제작한 달력은 특징이 있지요. 바로 날짜 숫자를 적는 칸이 다르지요. 일반 달력은 숫자로 날짜를 표기하고 작은 글씨로 음력 정도를 표기하지만 종교계 달력은 여기에 더해 각종 행사 날짜를 적곤 하지요. 도반HC가 공모전을 통해 모집한 그림과 사진은 15종의 달력이 모두 다르지만 숫자 부분은 거의 같습니다. 날짜가 큼직한 숫자로 인쇄돼 있고, 작은 활자로 음력 날짜 그리고 ‘성도재일’ 등 불교 행사 날짜가 표기돼 있습니다. 불교계 달력엔 올해의 경우 ‘갑진년, 불기 2568년, 단기 4357년, 서기 2024년’을 모두 병기한 점도 특징입니다.
공모전 결과는 4월 중에 발표되고 시상식까지 마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디자인 작업을 시작해 연말이 가까워지면 주문을 받아 사찰이나 단체 이름을 인쇄해 배포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을 갖지 못하다보니 달력 제작은 연말이 임박해서 이뤄지는 줄 알았습니다. 달력을 제작하는 것에도 거의 1년 가까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스마트폰이 늘면서 시계와 달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달력은 물론 벽걸이 시계가 걸린 사무실이나 공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요. 연말에 벽걸이와 탁상 달력을 주고받던 풍경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조계종의 달력 그림과 사진 공모전이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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